[해외영화계 뉴스]아날로그 필름, 존재이유 있다

입력 2001-03-09 13:14수정 2009-09-21 03:17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지난 여름 필자가 촬영을 맡았던 영화 ‘축하연(The Anniversary Party)’에는 전통적인 영화와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처음부터 필름에 촬영을 한 것이 아니라 먼저 디지털 비디오테이프에 촬영을 한 다음 그 영상을 아날로그 35㎜ 필름으로 옮겼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30여년간 영화는 35㎜ 필름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한 일류 영화학교에서 촬영을 가르치는 필자의 친구는 요즘 학생들이 습작영화를 필름으로 찍으려 하지 않는다고 탄식하고 있다. 앞으로 영화계를 책임지게 될 이 신세대들은 캠코더로 간단히 찍을 수 있는 것을 굳이 카메라로 찍기 위해 초점 노출 등 ‘기술적인 문제들’을 배우는 것을 귀찮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영화촬영장에서 필름이 사라지고 디지털 비디오테이프만 쓰이게 될까. 조지 루카스 감독은 곧 개봉될 영화 ‘스타워스:에피소드 II’의 촬영에 HD 24P라는 이름의 디지털 비디오시스템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 결과 “필름과 아무 차이가 없는 영상을 얻었다”고 밝혔다.

많은 영화 관계자들은 색조 질감 해상도 등에서 필름이 디지털 비디오테이프보다 훨씬 낫다고 확신하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필름을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이 존재하는 한 모든 영화를 필름으로 제작할 것이라고 천명하기까지 했다.

사실 필름 대신 디지털 비디오테이프를 사용하자는 주장에 가장 열성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비디오 장비 제조업체와 영화사 영업담당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창조적인 표현이나 미학, 혹은 화질의 개선이 아니라 바로 이윤이다. 필름 대신 디지털 비디오테이프를 사용하게 된다면 영화를 한 편 찍을 때마다 필름값 수백만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 또한 정보가 정교한 암호로 처리되는 디지털 비디오시스템은 무허가 해적판을 막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비디오테이프라는 신기술이 등장했다고 해서 필름이 반드시 사라져야 하는 걸까. 필자는 ‘동창회’의 제작과정에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축하연’의 촬영에는 주류 할리우드 영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술들이 많이 사용됐다. 또 디지털 비디오 영화의 틀을 마련해준 ‘도그마 95’식의 미학도 사용되었다. 도그마 95는 토마스 빈테르베르, 라스 폰 트리에 등의 감독들에 의해 덴마크에서 시작된 영화운동으로 조명 음악 등 주류 영화들이 사용하는 여러 가지 도구를 거부한다 따라서 복잡한 것들을 쳐내는 도그마 95의 미학은 자연스러움과 즉흥성을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 비디오 영화의 완벽한 틀이 되어주었다.. 그렇다면 디지털 비디오테이프와 도그마 95의 미학, 주류 영화의 도구들이 함께 사용된 ‘축하연’는 일종의 혼합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해답이다.

19세기 중반에 사진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회화의 죽음이 임박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진은 회화가 현실의 기록이라는 사슬에서 풀려나 오히려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주었다. 21세기에는 필름과 비디오가 과거의 사진과 회화처럼 서로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면서 각자의 독특한 특징들을 더욱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뉴욕타임즈]▽필자〓존 베일리(촬영감독)

(http://www.nytimes.com/2001/02/18/arts/18BAIL.html)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