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곽상경/금융기관 물갈이 빨리해라

  • 입력 2001년 3월 4일 19시 02분


경제에 있어서 개혁이란 나쁜 것을 도려내고 좋은 것을 정착시켜 체질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1990년대에 들어와 고비용 저효율이 가속되는데도 개혁은 하지 않고 팽창에 급급하다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아야 하는 위기를 맞았다.

위기에서 벗어나 튼튼한 경제가 되기 위해서는 개혁다운 개혁이 실질적으로 이뤄져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야 한다. 이런 점에서 기업, 금융, 공공, 노사 등 4대 부문의 개혁은 우리 경제의 운명을 좌우하는 역사적 과제였다. 개혁은 위기상황에서 정권 초기에 과감하게 경제논리에 의해 실천돼야 했다. 그런데 정부는 시기를 놓치고 실천에 실패했다.

개혁의 목표는 고비용 저효율을 저비용 고효율로 바꾸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부실기업을 정리하고 남은 기업은 스스로 구조조정을 확실히 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1차 공적자금 투입으로 살릴 금융기관은 확실히 살리고 살릴 수 없는 금융기관은 가차없이 정리하면서 살아난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과감한 체질개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개혁은 정부와 정부기관 및 공기업에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개혁에 걸맞은 노동시장이 되도록 법과 제도를 확실히 해야 한다. 이런 개혁은 1998∼99년에 확실한 효과를 나타낼 수 있었다. 그런데 정부는 공적자금으로 땜질만 하다가 개혁을 놓치고 말았다. 개혁이 되지 않은 것은 우리 경제의 현실이 말해주고 있다.

첫째, 기업의 체질이 개선되지 않았다. 부실기업을 정리하지 않았고 기업의 구조조정이 가시화되지 않았다. 대우를 사전에 과감하고도 단호하게 처리하지 못했고 현대의 부실기업에 구제금융을 계속 지원하고 있다. 많은 기업을 워크아웃, 법정관리, 화의 등으로 연명시키고 있지만 개선된 기업은 극소수다. 번 돈으로 이자를 갚지 못하는 기업이 많고 부채비율을 적정 수준으로 줄인 기업도 별로 없다.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서고 부채를 줄이며 경쟁력을 제대로 높인 기업이 거의 없다. 지방 소재 기업들은 오히려 더 악화됐다. 체질이 강화되지 않았고 자금사정이 더 어려워졌으며 국제경쟁에 더 취약해진 결과는 곧 개혁의 실패다.

둘째, 금융시장이 불안하다. 1차 공적자금 64조원이 투입되고도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늘어나기만 해 대우사건을 계기로 다시 45조원을 투입했는데도 금융불안은 더 심해졌다. 다시 공적자금 40조∼50조원을 투입하고 있으나 부실채권 해소가 가시적으로 나타나지도 않았고 금융기관의 경쟁력이 높아진 것도 아니다. 금융시장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마비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개혁의 결과를 찾아볼 수 없다. 은행합병과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내세우고 있으나 그 효과는 미지수다. 개혁은 고사하고 정상화도 제대로 못한 금융시장은 불안해소가 급선무다. 앞으로 몰려올 회사채 만기와 국제금융불안에 대처해야 한다는 절박한 지경에 있다.

셋째, 정부가 직접 바로 실행해야 하는 공공개혁이 기업이나 금융의 개혁보다 오히려 미진하다. 정부 자체의 개혁은 도외시됐고 정부기관의 구조조정도 없으며 국영기업의 변화도 미미하다. 민영화는 정상화지 개혁이 아니다. 구조조정이 제대로 되지도 않은 공기업이 변죽만 울리고 있을 뿐이다.

넷째, 노사관계가 개선되지 않았다. 노사정위원회의 역할이 거의 없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아진 것도 아니다. 개혁의 실마리도 찾아볼 수 없다.

세계 경제의 어려움과 지방 경제의 취약성 및 금융 불안 등을 감안해 지금부터라도 과감한 개혁을 다시 실행해야 한다. 진정한 개혁의지를 발휘해 구제금융을 중단하고 정리할 것은 서슴없이 정리하고 물갈이할 것은 철저히 갈아치우는 새로운 분위기가 조성돼 신뢰 회복이 이뤄져야 한다. 이해 당사자의 저항이나 여론의 향배에 흔들리지 않고 할 것은 하는 실천의 개혁이 있어야 한다. 경기 부양은 유보하고 위기 예방 차원에서 경제논리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문제란 미루면 미룰수록 누적되지만 신속하고 과감하게 해결하기 시작하면 가속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 특히 금융기관의 물갈이는 빠르면 빠를수록 효과적이다. 금융기관의 인사쇄신이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개혁은 개혁다워야 한다.

곽상경(고려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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