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귀농 실태조사…4명에 1명은 도시 U턴

  • 입력 2001년 2월 19일 18시 49분


“‘안되면 농사나 짓지’라는 말이 가장 위험해요. 농사야말로 전문직입니다. 여러 대에 걸쳐 농사를 지어온 농민들도 실패하는데….”

귀농민 20여 가구가 모여 생태농업을 추구해 온 전북 무주군 진도리 산촌에 김근희씨(34·여)가 혈혈단신 귀농한 것은 98년9월. ‘성공적인 귀농정착촌’으로 불려온 이곳에서도 벌써 2가구가 떠났다. 가구당 연수입이 수백만원에 불과해 버티는 데에 한계를 느낀 것. 1990∼2000년 귀농 인구는 1만8867명. 이 가운데 1만5000여명이 IMF구제금융 사태가 벌어졌던 98, 99년에 집중돼 귀농 자체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기도 했다.

최근 경기침체의 여파로 한동안 주춤하던 귀농이 다시 늘어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사회교육과 연구팀이 97년 이후 귀농자들의 실태와 문제점을 정밀조사한 보고서를 19일 공개했다.

▽IMF 귀농은 성공했나〓전국의 귀농민 526가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연구팀에 따르면 귀농민 중 56%가 “귀농은 실패한 선택”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62%가 “도시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 “귀농이 성공적이었다”는 답변은 11.8%에 그쳤다.

‘도시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로는 ‘낮은 소득’(31.6%), ‘자녀교육 여건의 열악’(17.7%) 등이 꼽혔다. 귀농민들의 학력은 고졸과 대졸이 전체의 80%였고 전직은 회사원(38%)과 자영업(35%)이 많았다.

또 본보 취재팀이 각 지방자치단체에 확인한 결과 97년 이후 귀농민 가운데 경남지역의 경우 2901가구 중 208가구가, 강원도의 경우 1470가구의 30%인 441가구가 재이농해 전국의 귀농민 4명중 1명 정도가 이미 도시로 U턴한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대 연구팀의 임형백연구원은 “귀농민들은 젊고 고학력인데다 타산업 종사경험까지 잘 활용하면 후계농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라며 “그러나 이들의 상당수가 개인적인 준비 부족과 정책당국의 지원 부족으로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빚더미 위에 앉은 귀농민들〓97년3월 고향에 내려와 포도농사를 지어 온 김모씨(39)는 귀농정책자금으로 받은 1500만원과 매년 1000만원 이상씩을 투자했지만 지금까지 건진 순수익은 200만원이 채 안된다.

“대구의 전셋집을 정리한 3500만원까지 털어 넣고 뼈빠지게 일한 대가가 빚뿐입니다. 땅을 처분해 빚만 값을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도시로 나가고 싶습니다.”

서울대팀이 제시한 ‘귀농 실패이유’는 영농자금부족(26%), 농산물가격의 불안정(20%), 영농기술부족(15%) 등이었다. 성공이유로는 ‘적정작목의 선택’을 꼽은 사람이 가장 많았다.

강원 횡성군으로 귀농한 윤종상씨(32)는 “통상 가구당 2000만원 한도로 받는 귀농정착금을 비닐하우스 등 시설에 투자하라고 권유하는데, 별다른 기술 없이 이렇게 덥석 투자하면 그것은 고스란히 빚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정착자금 융자도 좋지만 귀농자 대상의 농업기술 교육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적절한 작목 수요관리를 통해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키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사그라지지 않는 귀농의 꿈〓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일하던 이모씨(33)는 99년5월 전남 화순군으로 귀농했다 1년 만에 ‘U턴’했다. 그러나 다시 취직하고서도 귀농의 꿈을 완전히 접지 못한 그는 다시 사표를 내고 춘천에서 직거래 농업을 목표로 ‘2차 거사’를 준비중이다.

“첫 귀농은 정말 ‘과격한’ 것이었어요. 농촌에서 자기 땅이 없으면 도시에서 직장 없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번엔 철저한 준비로 실패하지 않을 겁니다.”

농림부에 따르면 경기침체가 다시 시작된 지난해 4·4분기에 158명이 귀농, 3·4분기(122명)보다 29%가 늘어 99년 이후 하향세를 보여 온 귀농이 증가세로 돌아설 조짐이다.

전국귀농운동본부의 성여경 사무처장은 “지난해 말부터 귀농 관련 문의가 점차 늘어 22일로 예정된 제16기 귀농학교 신청자가 지난해의 두배나 된다”며 “요즘의 귀농자들은 IMF관리체제 때의 ‘자포자기형’에 비해 실천전략까지 궁리하는 신중함이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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