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교수의 법과 영화사이]<래그타임>"걸레 같은 세상"

  • 입력 2001년 2월 12일 19시 11분


<래그타임> (Ragtime)

감독: Milos Forman (1981)

출연: James Cagney,

현대 법철학의 대가, 로날드 드워킨(Ronald Dworkin)은 모든 문학작품을 '연작소설'(chain novel) 이라고 명명하였다. 모든 작품은 시대의 산물이고 후세작가는 선배작가의 시대적 업적에 '가필'할 뿐이라는 것이다.

1981년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던 영화 '래그타임'(Ragtime)은 드워킨의 이론을 확대 적용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미국의 인기작가, 닥터로( E. L. Doctorow )의 베스트 셀러(1975) 소설을 2시간 반 짜리 화상으로 각색한 것이다. 같은 제목의 '원작'도 독일의 대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Heinlich von Kleist) 의 중편소설 '미하엘 콜하스' Michael Kohlhass (1810)의 패러디이다. 세부 장르 사이의 경계가 무너진 시대에는 영화도 엄연한 문학작품이다. 시대와 장르의 경계를 넘어 문자가 영상으로 변신하여 전승되는 연작의 과정이 흥미롭다.

재즈의 원조로 알려진 래그타임은 피아노로 연주하는 흑인의 음악이다. 체인 송(chain song), 워크 송(work song)등 악기 없이 오로지 성대에 의존해야한 했던 노예들의 음악은 19세기 후반부터는 약간의 외적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었다. 그리하여 남부 뉴올리언스의 흑인 피아니스트들 사이에는 신코페이션을 빈번하게 사용하는 경쾌한 래그 타임이 개발되었다. 이어 프렌치 쿼터의 좁은 연주홀에서 브라스밴드와 함께 탄생한 재즈는 독특한 주법과 창법에 힘입어 급속히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 재즈라는 단어의 어원이 성행위를 암시하고, 반복적인 리듬이 성의 환청을 유도한다는 사실도 유행에 기여했을 것이다.

다소 품위를 갖춘 재즈의 원조, 래그타임을 음표 대신 뜻으로 파자(破子)하면 '걸레(rag)같은 세월(time)'이 된다. 이러한 제목이 암시하듯 영화 래그타임은 20세기 초입의 미국의 어두운 단면들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적절하게 등장하는 자료화면이 이를 재확인해 준다.

소설 Ragtime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미국 산업혁명의 영웅인 헨리 포드와 J. P. Morgan 등 실존인물을 포함하는 수많은 사람이 등장하는 방대한 모자이크 소설이다. 영화는 이들 중에 3개의 주된 플로트를 결합한다. 인종적 갈등과 사적 복수라는 핵심 주제를 담는 흑인피아니스트의 이야기와 함께 유럽에서 갓 이민 온 예술가의 이야기, 그리고 탈선한 어린 아내의 정부를 살해하고 심신상실(insanity)의 항변을 통해 감옥 대신 정신병원에 감금되는 상류사회 한량의 이야기를 엮고 있다.

자존심 높은 흑인 피아니스트 콜하우스는 고급승용차를 몰고 약혼녀를 만나러 가는 길에 소방서 앞을 지난다.(Coal- house라는 주인공의 이름도 클라이스트의 Kohlhaas에서 음차(音借)한 것이며, '석탄집'이란 흑인의 검은 피부를 상징하는 것은 물론이다. 포드 자동차는 작센 귀족에게 강탈당한 검은 명마의 현대판임을 원작을 읽은 독자라면 쉽게 감지할 수 있다.)

백인 소방대원들은 길을 막고 통행료를 요구한다. 공로의 자유통행권과 법치사회를 믿는 콜하우스가 거절하자 이들은 온갖 모욕적인 언사와 함께 자동차를 망가뜨린다. 검둥이 주제에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사실부터가 이들에게는 배알이 틀리는 일이다. 가해자의 공식 사과와 함께 자동차의 원상회복을 주장하는 그는 법적 절차를 통해 구제 받으려 시도하지만 번번이 인종적 편견 때문에 좌절된다. 미합중국 부통령(원작에서는 대통령) 에게 청원을 구하는 과정에서 약혼자가 사고로 죽자 분노가 극도에 이른 콜하우스는 법적 절차를 포기한다. 소방서를 불지르고 대원들을 살해하고, 이에 그치지 않고 무장테러단을 조직하여 Morgan 도서관을 점거하고 소장된 귀중한 자료를 폭파하겠다고 위협한다. 이 도서관의 귀중본 실에는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톤의 친필 서신을 편지를 포함하며 자랑스런 미국사의 보물들로 가득 차 있다. (이 편지는 클라이스트의 작품에서 콜하우스의 목에 걸려 있던 운명도(運命圖)에 해당한다.)

폭탄 제조의 기술을 가진 백인 청년이 사회적 의식에 눈떠 이들에 가세한다. 중재에 나선 흑인 지도자가 합법투쟁론을 내세워 콜하우스를 설득하지만 소득이 없다. (클라이스트의 작품에서 마틴 루터나 마찬가지로) 최후의 중재자로 나선 사람은 테러단에 가세한 백인청년의 친척이다. 그는 당초 콜하우스와 흑인에 대해 냉담했으나 아내로부터 자비와 연민의 정을 깨치게 된 것이다. 그의 중재로 대치한 경찰과의 협상을 통해 동료의 안전한 탈출을 확인한 콜하우스는 항복한다. 그러나 무기를 버리고 도서관 밖을 나서자마자 경찰의 총격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다. 스스로 죽음의 상황을 유도한 것이다.

이 영화는 콜하우스의 복수의 도덕적, 법적 정당성을 가볍게 처리하였다는 비판이 따른다. 그리하여 흑인의 정의에 대한 성의 있는 성찰의 계기를 유도하기보다는 단순한 일탈로 마무리한 아쉬움을 강하게 남기는 영화이다. 그래서 '걸레 같은 세상'이라는 속설 제목이 더울 어울리는 지도 모른다. 서정성이 차고도 넘치는 주제가 "One More Hour" 가 래그타임과 동반한다.

<서울대 법대 교수>

ahnkw@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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