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첫장편 '라디오'펴낸 류가미 인터뷰

  • 입력 2001년 2월 12일 18시 35분


◇"소설 같지 않다고? 그럼 어때요"

“이 작품이 소설이 아닌 것 같다구요? 그럼 어때요, 그냥 이야기라고 생각하세요. 굳이 이름을 붙이려면 ‘내적 드라마’라고 하시던지요.”

생애 첫 신문 인터뷰에서 신인작가 류가미(33)는 첫 장편소설 ‘라디오’(문학과지성사)를 이렇게 정의했다. 그래도 현란한 환상과 우의로 가득한 작품의 실체는 여전히 모호했다. 박상륭의 신화소설 ‘죽음의 한 연구’가 그러했듯이 이 작품도 전통적인 문학 장르의 그물을 스스르 빠져나간다.

이야기의 큰 틀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진’이란 여자 아이의 내, 외적 성장기다. 아버지와의 불화로 어머니의 몸이 유리컵처럼 산산조각 나버린 후 집을 나온 그는 태초의 소리를 찾는 방랑객 문수를 만난다. 진은 그를 통해 여러 영적 스승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인격을 형성해 나간다.

둘은 우여곡절 끝에 부부가 되지만 문수는 곧 폐병에 걸리고 진에 의해 안락사당한다. 진은 게데(부두교의 저승사자)의 도움으로 죽음의 통과제의를 거친 뒤 영(靈)의 세계에서 문수와 재회한다.

“진은 불교에서 자비를 상징하는 관음보살을, 문수는 분별을 상징하는 문수보살을 상징해요. 진은 문수를 통해 분별을 배우고, 문수는 진을 통해 자비와 연민을 배우죠. 죽음을 뛰어넘는 그들의 결합을 통해 인간 성숙의 드라마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현란한 환상으로 가득한 내용

"내적 성숙 상징적으로 그렸죠"

작가는 낯선 용어를 동원해가며 이 작품에 깔린 불교적 세계관과 신화적 상상력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두 주인공을 비롯해 성장의 불안을 상징하는 릴리스, 퇴폐성을 상징하는 자드키엘 등 등장인물 모두가 동 서양 신화에서 모티브를 빌어온 것이다.

“제가 생각한 주제는 단순해요. 커뮤니케이션,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상대의 인격을 자기안에 내면화하는 것, 진을 통해 내적 성숙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죠.”

작가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한때 영화와 방송 게임 대본을 썼고, 지금은 심리치료를 공부하고 있다. ‘신출내기’ 작가가 나이 서른에 마수걸이로 이처럼 중후한 작품을 썼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는다.

“제 작품을 어렵게 보지말고 그냥 재미있게 즐기면 좋겠어요. 요리사가 아무리 희한한 조리법을 써도 맛만 있으면 그만이잖아요?”

하지만 많은 독자와 평론가들이 이 낯선 ‘물건’ 앞에서 당혹해할 듯하다. 3년 넘게 출판사 서랍 속에 들어있다가 이제야 출간된 이 작품 뒤에 그 흔한 ‘주례사 평문’조차 실리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은 아니었을까.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좋기는 한데 뭔지는 잘 모르겠고, 어떤 에너지는 느껴진다”고 말했다고 한다.

묵직한 작품을 내놓았지만 뜻밖에도 작가의 포부는 가벼운 것이었다. 앞으로 ‘멋진 판타지 소설’ 한 편 쓰는 것, 그리고 잔고가 넉넉한 예금통장을 갖는 것, 좋은 남자와 결혼해 사랑으로 똘똘 뭉친 가족을 갖는 것. 한 마디로 ‘욕심많은 아줌마 지망생’이다.

“예술은 최고의 소통수단이지만 사랑보단 못해요. 위대한 인간이 되면 뭘하나요? 그냥 좋은 사람들과 알콩달콩 재미있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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