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과 서의 벽을 넘어 9]도쿄대 마쓰오카 교수

  • 입력 2001년 2월 11일 18시 56분


“20년쯤 전 한국의 사물놀이 공연을 보면서 받은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역동성이란…. 바로 이거다 싶었지요.”

일본의 전통 가면극인 노(能)를 연구하는 도쿄대 마쓰오카 신페이(松岡心平) 교수는 노를 공부하며 가졌던 의문의 해답을 사물놀이에서 찾았다. 사물놀이의 역동적 표현방식을 보면서, 일본 중세의 연극이 단지 현재 전해지는 노처럼 정적인 것만이 아니라 좀더 다양한 형식이 있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본래 그의 관심사는 노의 기원을 찾는 것. 그러나 가면극의 기원을 찾아 올라가 보니 일본 한국 중국에서 모두 12∼13세기에 발생했고, 귀신을 물리치는 의례에서 출발한 점도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사물놀이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나아가 그는 가면극과 연극의 심층을 파고들다 보면 ‘일본’이라는 경계, 나아가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 사이의 장벽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관심을 기울인 것이 ‘극의 심층심리’ 문제였다.

“아일랜드 출신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예이츠가 20세기 초에 쓴 희곡 ‘매의 우물에서(At The Hawk’s Well)’, ‘연옥(煉獄·Purgatory) 등을 보면 이미 14세기부터 인간의 심층심리 문제를 천착해 온 일본 노의 영향을 볼 수 있습니다.”

노의 한 종류인 무겐노(夢幻能)는 영혼과의 만남이라는 초자연적 현상 그대로를 무대 위에 재연하면서, 주인공이 자신의 원혼(寃魂)과의 대화를 통해 인간 내면의 심층심리를 표현한다. 20세기에 만들어진 예이츠의 희곡에서는 죽은 자와의 만남이 보다 복잡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표현된다.

1910년 경 노 대본의 영문 번역 원고를 본 예이츠는 심층심리 문제의 연극화 가능성을 발견했고, 당시 리얼리즘으로만 치닫고 있던 서양연극에 이를 도입해 초자연적인 것과 인간 영혼의 심층을 드러내는 새로운 연극 세계를 만들어 냈다.

“예이츠의 영향을 받은 사뮤엘 베케트가 1950년대에 부조리극을 만들었듯이, 인간의 심층심리에 대한 노의 관심과 그 표현방식은 서양연극에 직 간접적으로 지속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현대 연극에서 무의식과 심층심리는 중요한 주제로 자리잡고 있다. 그는 예이츠의 작품이 일본으로 다시 역수입돼 비슷한 유형의 노를 만드는 계기가 됐음에도 주목한다. 노의 연구 뿐 아니라 공연에도 직접 관여하고 있는 그는 노와 현대 연극의 교류 속에서 ‘심층심리’의 문제를 통해 연극의 보편성을 파헤치고 있다.

<도쿄〓김형찬기자>khc@donga.com

◇마쓰오카 교수 약력

△1954년 오카야마(岡山)현 출생

△도쿄대 및 도쿄대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 박사과정수료(일본중세문학전공)

△현재 도쿄대 대학원 초역(超域)문화과학전공 교수

△저서:‘연회(宴會)의 신체’(岩波書店), ‘노오(能):중세로부터의 울림’(角川書店), ‘노오란 뭐지?’(新書館), ‘귀신과 예능:동아시아의 연극형성’(森話社·편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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