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방형남/한국, 어디쯤에 있을까

  • 입력 2001년 2월 11일 18시 44분


9일자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에 큼지막한 이란 관련 광고가 게재돼 눈길을 끌었다. 이란의 최고 종교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의 사진이 들어있어 언뜻 보면 이란 정부가 게재한 것처럼 보이는 이 광고는 국경없는 기자회(Reporters without borders·RWB)가 이란의 언론탄압을 비난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언론단체인 RWB는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언론탄압 사례를 고발하면서 언론인들이 자유롭게 보도 업무에 종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RWB는 광고에서 1월 30일 이란에서 알리 아프사히 등 11명의 언론인이 투옥됐다며 이들의 석방청원에 서명해 달라고 호소했다. 광고문안은 이렇게 계속된다. “알리 하메네이는 이란공화국을 이끈다. 하메네이는 이란 국민도 이끈다. 하메네이는 앞장서서 이란 언론인들을 투옥하는 것을 중단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프사히 등 이란 언론인은 짧게는 4개월에서 길게는 1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RWB는 이란 혁명재판소가 이들에게 내린 중형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유엔 인권협약 19조에도 위반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란의 언론 상황은 우려할 만하다. 6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보수파와 개혁파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보수파가 장악하고 있는 사법부가 집중적으로 개혁성향의 언론을 공격하고 있다.

현재 한국을 방문중인 이란 언론사 간부들과의 대화에서도 이란의 열악한 언론상황을 절감할 수 있었다. 개혁파 신문 함바스타기(결속)의 라만골리 골리자데 편집국장 등은 지난 주 동아일보사를 방문했을 때 “한국 언론은 대통령을 어느 선까지 공격할 수 있느냐” “언론보도에 레드라인(제한선)이 있지는 않느냐” 등 주로 언론자유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쉬웠다. “사실에 기초한다면 얼마든지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다” “언론보도에 성역은 없다”고 답변하면서 이란 언론은 과거 한국이 군사정권하에 있을 때처럼 정부의 모진 탄압에 시달리고 있음을 실감했다.

또 다른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지난 해 7월 중순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총리는 출입기자들의 보도태도에 크게 화를 내며 이틀 동안 기자단의 질문에 일절 대답을 하지 않았다. 모리 총리는 기자들이 자신의 잘못은 대서특필하고 의미 있는 발언은 보잘것없게 다룬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자신의 참뜻이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말도 했다. 모리 총리와 출입기자들의 관계는 지금까지도 냉랭하다.

한국의 상황이 이란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란 언론인들의 쉬운 질문에 쉬운 대답을 하면서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언론을 겨냥한 이후 이란과는 다른 차원의 ‘제한’이 언론에 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총리가 이틀 동안 기자단의 질문에 함구한다는 소박한 대응을 한 일본과 비슷하다고 할 수도 없다. 모리 총리는 사태를 정부와 언론의 문제가 아니라 총리와 출입기자의 문제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와 언론의 관계는 어디쯤에 자리잡고 있을까. 지켜볼 일이다.

방형남<국제부장>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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