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츠' 선진국에서 배운다]수천억대 빌딩 '샀다 팔았다'

  • 입력 2001년 1월 30일 18시 49분


호주 시드니 중심부 조지 스트리트에 있는 복합빌딩 ‘오스트레일리아 스퀘어’. 지상 48층짜리 원기둥형 고층건물과 13층짜리 오피스건물 두 동(棟)으로 이뤄진 이 빌딩의 주인은 수천명이 넘는다. 이들 중에는 회사원 상인 등 일반 소시민들도 많다.

1억6500만 호주달러(약 1155억원)의 값어치가 있는 대형빌딩인 데도 소유주가 매일 바뀐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가당치도 않은 ‘사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호주의 부동산 시장에선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아주 흔하게….

무엇이 이를 가능케 했을까. 답은 ‘상장 부동산신탁증권(LPT·Listed Property Trusts)’. 호주정부가 71년 도입한 LPT는 다수의 투자자들에게 돈을 위탁받아 신탁증권을 발행해주고 끌어모은 자금을 부동산에 투자한 뒤 이익이 생기면 원금에 붙여 돌려주는 일종의 부동산 간접투자상품. 건물 주인이 수천명이 넘고 소유주가 매일 바뀐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분이 주식시장에 상장돼 자유롭게 거래되고 투자이익을 배당받는다는 점에서 근본 원리는 미국의 리츠(REITs)와 비슷하다. 그러나 회사구조를 갖는 리츠와는 달리 계약방식의 신탁규약에 따라 운영된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스퀘어 14층에 사무실을 둔 부동산전문 투자기업 ‘렌드리스(Lend Lease)’의 스테픈 뉴턴 아시아태평양 담당 회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그는 “리츠는 회사구조여서 이익의 95%만 배당하고 나머지 5%는 다시 투자하지만 LPT는 신탁방식이어서 모든 투자이익을 투자자들에게 배당한다”며 “투자자로서는 LPT가 리츠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호주 LPT업체의 연간 배당수익률은 통상 6∼8%. 5∼7%선인 리츠보다 짭짤하다. 투자이익의 일부를 자기 몫으로 떼어 재투자하는 리츠와는 달리 버는대로 모두 돌려주기 때문. 그만큼 고정적인 현금배당을 원하는 투자자들로부터 인기가 높다.

물론 현금배당 외에 상장된 주식값이 올라 얻게 되는 수익도 무시하지 못할 부분. 배당수익에 주가상승 수익을 더한 LPT의 99년 투자수익률은 10.9%로 10년만기 채권 수익률(9.4%)보다 1.5%포인트 높았다. 안정성 뿐 아니라 수익성 면에서도 훌륭한 재테크 수단인 셈.

자금 유동성을 높이고 싶은 기업이나 투자의 위험분산이 필수적인 기관투자가들도 LPT를 선호한다. 전체 LPT 주주들의 70∼80%를 금융기관이나 퇴직연금 및 은행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호주 LPT시장의 규모는 2000년 말 현재 325억 호주달러(22조7500억원)으로 전체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9%에 이른다. 반면 미국이나 일본의 부동산 간접투자시장의 증시비중은 각각 2%, 1% 미만.

시드니 금융 중심가 브릿지 스트리트에 있는 투자전문회사 ‘AMP헨더슨 글로벌인베스터’의 레이첼 마리스 홍보담당 이사는 이에 대해 “LPT가 안정성과 수익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투자수단이라는 점을 투자자들이 충분히 인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jinhup@donga.com

▼인터뷰▼코스클리 AMP헨더슨사 LPT담당이사

“LPT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호주경제를 살린 일등 공신입니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던 자금을 부동산 시장으로 다시 끌어들여 결국은 경기회복을 이끌어 냈죠.”

다국적 투자 전문회사인 ‘AMP헨더슨 글로벌인베스터’사의 스테픈 코스틀리 LPT담당 이사는 LPT가 호주경제에 기여한 공을 이같이 설명했다. AMP헨더슨 글로벌인베스터는 호주 LPT시장에서 ‘빅3’에 속하는 업체. 호주에서 4개, 뉴질랜드에서 1개의 LPT를 운영하고 있다.

코스틀리 이사는 “LPT는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갖춘 상품이어서 경기 불황기일수록 빛을 발한다”고 말했다.

71년 처음 도입된 LPT가 호주에서 본격적으로 각광을 받은 것은 무려 20년이 지난 90년대 초. 오랜 호황을 누렸던 호주경제가 불경기를 맞으면서부터다.

부동산 값이 폭락하고 이자율은 나날이 높아만 갔다. 부동산에 뭉칫돈을 투자했다가 제때 회수하지 못한 기업이나 개인들도 많았다.

돌파구가 LPT였다. 부동산가격이 폭락한 만큼 투자메리트가 높아졌다. 얼마 안되는 돈으로도 투자할 수 있어 그런대로 돈이 모였다. 투자결과는 대성공.

코스틀리 이사는 “LPT투자로 재미를 본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부동산시장은 물론 얼어붙은 자금시장도 정상을 되찾았다”며 “경기 하강국면을 맞고 있는 한국도 호주의 경험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또 “올 7월부터 한국에서 부동산투자회사제도가 도입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LPT 운영의 노하우를 살려 한국시장에 진출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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