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찬식/예술가에 대한 예의

입력 2001-01-28 18:57수정 2009-09-2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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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아버지는 젊은 아들이 그리는 그림이 영 마음에 들지 않자 어느 날 “재능 없는 일에 매달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아들이 그림에 별로 소질이 없었던 것이다.

고흐는 아버지의 말을 간단히 받아넘긴다. “소질이 없어도 좋습니다. 저는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을 느끼니까요.”

실제로 예술인들을 만나 보면 보통 사람들과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가난한 예술가’의 대명사인 연극인들은 관객이 오지 않으면 보수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다. 어떤 연극은 불과 몇 명의 관객을 앉혀 놓고 공연되기도 한다. 그래도 막이 오르면 이들의 눈은 어느 때보다 빛난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인들의 원고료 수입은 한달 평균 10여만원에 머물고 있다. 베스트셀러작가로 큰돈을 번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이들이 쉽게 문학의 길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이 돈에 좌우되는 세상이다. 돈을 많이 번 사람은 어떻게 벌었든지 상관없이 인정받고 가난한 사람들은 패배자, 낙오자로 취급되기 십상이다. 그러기에 도저히 돈과 인연이 없어 보이는 이들의 존재는 요즘 세태에서 유별나다. 물질주의적 관점으로 보면 이들이야말로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화가 김기창 화백이 타계했다. 지난해 소설가 황순원씨와 시인 서정주씨가 별세한 데 이어 우리 문화계는 거장을 잇따라 잃었다. 이들은 미술 소설 시를 통해 우리 문화의 새 지평을 연 분들이다.

이탈리아가 미켈란젤로를 내세우고 영국이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치듯, 자기 나라가 배출한 거장 예술가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적절한 예우를 하는 것은 문화국가라면 공통된 모습이다. 나아가 선진국들은 문화 지원에 가장 앞선 나라라는 인식을 대외적으로 심으려 애를 쓴다.

문화예술인에 대한 ‘예우’라는 점에서 우리는 어떤가. 소설가 황순원씨는 생전에 정부에서 은관문화훈장을 주려 했으나 거부한 적이 있다. 본인은 이유를 말하지 않았지만 문화계에서는 그의 업적으로 보아 당연히 한급 높은 금관훈장이 주어졌어야 했다고 입을 모은다.

98년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초빙된 후 3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떠난 지휘자 정명훈이나, 끝내 고국땅을 밟지 못한 작곡가 윤이상의 사례도 크게 보아 우리 쪽에서 합당한 예우를 갖추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다.

최근 타계한 세 분에 대한 일회적인 애도나 추모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작품이 제대로 대접받고 업적이 오래 기억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이번에도 반짝 추모 분위기가 일다가 관심권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예술가들이 힘든 여건에서도 창작열을 불태우는 것은 고흐처럼 ‘행복감’과 ‘자부심’ 때문이리라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예술가의 이 같은 ‘순수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또 존중하지 못한다면 이 땅의 예술마저도 어느 날 ‘사소한 것’으로 전락해 버릴지 모른다.

홍찬식<문화부장>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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