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임성호/'고위직 쿼터제' 문제 많다

  • 입력 2001년 1월 20일 16시 40분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는 아니다. 적어도 정부 고위 공직자 인사의 경우에는 그렇다. 아무리 공평한 인사를 해도, 아무리 적격자를 적재적소에 배치해도, 운영체계가 권위주의·획일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공직자의 능력이 발휘될 수 없다. 고위공직자가 위로는 대통령의 의중만 살피고 아래로는 획일적인 상의하달식 명령만 내릴 수밖에 없는 운영체계에서라면 인사가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

편중인사 시비를 없애기 위해 정부가 쇄신책을 발표했으나 그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 쇄신책의 치졸함도 문제지만, 행정부에 여전히 경직된 권위주의적 운영 풍토가 남아 있다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편중된 인사를 막겠다는 의욕은 높이 살 만하다. 고위 공직자 임명 때 출신지와 출신학교를 고려해 지역이나 학교간 형평을 기하겠다는 취지에 누가 이의를 달 것인가. 그러나 그 취지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방식이 치졸해 부작용을 자아내고, 실효를 낼 만한 운영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다면 과연 시도할 필요가 있는지 회의가 들 수밖에 없다.

▲편중인사 방지 의욕은 평가

특정 지역이나 학교 출신이 30∼40%를 넘을 수 없다는 쿼터제 방식이 유치하다는 점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다. 쿼터제 방식은 역(逆)차별의 위험성, 능력 본위 원칙의 희석, 비율 상한선의 모호성, 출신지역 기준설정의 자의성, 벼락 승진·낙하산 인사의 가능성 존속, 핵심 요직과 비핵심 고위직간 구분의 무시 등 많은 부수적 문제를 내포한다. 그래도 이런 문제들은 편중인사 방지를 통한 국민화합이라는 대의(大義)를 위해서라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보다 큰 우려를 자아내는 점은 쿼터제를 비롯해 어떠한 인사쇄신책도 정부의 현 운영 풍토에서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늘날 고위 공직자가 제도로 규정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지, 그리고 중립성을 지키며 정책집행을 지휘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는 자기를 임명해준 사람에게 개인적 충성을 바치기보다는 헌법 체제와 법 제도에 책임을 지며 공직을 수행해야 한다. 그래야 법치주의 원리가 지켜진다. 또한 정파성에서 벗어나 중립적 독자성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현대 행정국가 모델의 핵심 원리이다.

만약 공직자가 최고 인사권자인 대통령을 포함해 상급자들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고 법제도적 역할에 충실하기 어려운 구조라면, 지역 학교간 인사 균형이 이뤄져도 결과는 똑같을 것이다. 만약 공직자가 정치바람에 노출돼 줄서기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개인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을 임명한다 해도 그 능력이 중립적으로 발휘될 수 없다. 운영체계가 변하지 않는데 온갖 인사쇄신책을 짜내봐야 소용 없을 뿐만 아니라, 괜히 겉치레에 만족하다가 속이 더욱 곪는 것을 간과할 수 있다.

정부도 기발한 인사 고육책(苦肉策)의 하나로 국정의 효능성을 높이고 아울러 국민화합을 이룰 수 없음을 잘 알 것이다. 2001년도 20대 국정과제에서 여러 목표를 포괄적으로 제시했음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 운영체계에서 권위주의적 획일주의적 성격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20대 국정과제에서 부각되지 않고 있어 실망스럽다.

▲권위-획일주의부터 고쳐야

편중 인사에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는 그 자체가 나빠서라기보다는 그 결과로서 특정 입장이나 이익만 일방적으로 도모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한 주관적 인식은 땅에 떨어진 정부 신뢰도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된다. 만약 정부에 대한 전반적 평이 낮지 않다면 왠만한 인사 불균형이 시비를 불러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 통상적으로 대통령 출신 주(州)의 인사들이 대거 고위 공직을 차지하기도 하지만 별로 논란이 되지 않는다. 인사보다 중요한 정부 운영이 큰 불만을 낳지 않기 때문이다.

인사 쿼터제가 고육책이고 실제적 효과보다는 상징적 의미가 더 크다는 점은 당국자도 인정하는 것 같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근원적으로 정부 운영체계를 고쳐 나가는 데에 관심을 기울일 때다.

임성호 <경희대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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