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동원/'적전 분열' 철강업계

  • 입력 2001년 1월 18일 18시 40분


“현대강관과 연합철강은 합병해야 산다.”(유상부 포철회장) “남의 회사 합병을 운운하지 마라.”(정몽구 현대차회장) “공급과잉 원인제공자가 문제를 풀어야 한다.”(이철우 연합철강 사장)

철강업계가 연일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연합철강(16일) 현대강관(17일)이 차례로 기자회견을 자청, 자사 주장을 펼쳤다. 포철도 18일 현대측을 몰아붙이는 기자회견을 열어 철강업계의 맏형답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포철이 현대강관과 연합철강의 합병을 공식제안(본보 10일자 보도)한 이후 철강업계는 이처럼 벌집 쑤신 듯 들끓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철강분쟁에 그치지 않는다. 포철과 현대차 그룹간의 감정싸움을 계기로 다른 업체들에 대한 ‘줄서기 강요’가 이어지고 있다. 재계에 심상찮은 편가르기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한국 철강업체들이 이처럼 소모전에 힘을 빼는 동안 반사이익을 거두며 미소짓는 쪽이 있다. 한국에서 핫코일이 마치 ‘신주단지’나 되는 듯한 모양새가 전개되자 일본측은 휘파람을 불고 있다. 2, 3년 전부터 감산을 단행하는 등 어려움에 빠진 일본 철강업체들은 요즘 한국에 수출하는 물량을 대기 위해 녹슨 기계를 닦고 있다. 게다가 일본 고로업체들은 최근 한국으로 수출하는 핫코일 가격을 불과 한달 전보다 t당 25달러나 올린 230달러에 팔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핫코일 수입 규모는 줄잡아 440만t. 굳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사들이는 국내업체들 때문에 안 나가도 되는 1000억원 이상이 일본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셈이다. 한 철강전문가는 “한국철강업체들이 세계 철강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좋은 기회가 왔는데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가뜩이나 경제가 심상치 않은 요즘이다. 이제라도 철강 3사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해외로 빠져나가는 ‘1000억원 되찾아오기’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그래서 나온다.

김동원 <경제부>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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