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재호/강삼재의원이 풀어라

  • 입력 2001년 1월 18일 18시 35분


연초 정국이 위태위태하다. ‘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사건을 놓고 여야는 첨예하게 맞서 있다. 극한 대치가 어디까지 갈지 가늠하기 힘들다.

번번이 느끼는 바지만 검찰을 포함한 여권의 사건 대처능력은 혼란스럽다. ‘국고 횡령’이니 ‘세금 도둑’이니 하며 몰아붙일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돈 받은 정치인에 대해서 조사하지 않겠다”고 한다. “당사자들이 대부분 안기부 돈인 줄 모르고 받았기 때문에 범죄 혐의가 없다”는 설명이지만 어쩐지 옹색하다. 이러니까 ‘표적 수사’니 ‘야당 흔들기’니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닌가.

조사하지 않기로 한 결정도 검찰의 독자적 판단이었을까. 검찰은 청와대와 사전 교감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여권의 중진 인사들도 안기부 돈을 받았음이 확인된 직후 조사 포기 결정이 나왔다. 이러니 정치적 고려가 있었을 것이란 의혹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의혹들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 노력이 흐려져서는 안 된다. 문제의 본질은 정말 안기부 돈이 선거자금으로 건네졌는지와 그 과정에서 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밝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는 얘기인데 당사자인 한나라당 강삼재(姜三載)의원은 이제라도 검찰에 출두하는 게 옳다. 문제의 돈이 안기부 예산인지 아닌지 국민이 무엇보다도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으므로 나가서 사실을 떳떳하게 밝혀주는 것이 그를 뽑아준 국민에 대한 도리다.

야당도 “진상을 밝히겠다”고 한다. 그러나 당사자에 대한 조사 없이 진상이 드러날까.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래서 특검제를 하자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겠지만 특검제는 당사자가 정부의 고위관리이거나 이른바 실세(實勢)여서 검찰 수사가 어렵거나 굴절될 가능성이 있을 때 실시한다는 것이 원래의 취지다. 야당이 마련 중인 부정부패방지법안에도 특검제는 그런 경우에 실시하는 것으로 돼 있다.

솔직히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금방이라도 “왜 한쪽 편을 드느냐”는 항의가 쏟아질 것만 같다. 하지만 이 문제는 누가 누구 편을 드는 그런 차원이 아니다.

사람이 자신이 속해 있는 환경에 매몰되지 않고 객관적인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적 현상은 특히 그렇다. 누구나 자신이 속한 계층과 상황 속에서 이를 보고 판단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은 지식인에게 기대를 걸었다. 그는 “지식인은 지식인이므로 자신이 속한 계급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현상을 공정하게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른바 ‘지식인에 의한 종합화’다. 여기에서의 ‘계급’을 한국적 현실에 대입하면 ‘정파’나 ‘지역’쯤 되겠다.

이번 사건의 본질을 객관적으로 보자. 어떻게든 여야 대결 정국은 풀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당사자가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마음으로 나서야 한다. 지식인은 못 되지만 그것이 문제해결의 첫 단추를 채우는 일이 아닐까 한다.

이재호 <정치부장>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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