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허승호/'밀실정책' 편하긴 해도

  • 입력 2001년 1월 16일 19시 13분


난해하기 짝이 없는 초월함수 미적분 문제가 있다고 하자. 수학을 잘 모르는 사람이 여럿 둘러앉아 몇 시간을 토론 해도 답을 찾기 힘들다. 투표로 해결될 일도 아니다. 이런 문제는 수학자가 풀어야 한다.

산업은행의 부실회사 채 인수제도와 관련한 보완대책이 연일 쏟 아져나오고 있다. 수혜기업을 매달 재선정한 다느니,기업별로 금리를 차등 화한다느니, 보증을 강화한다느니 이런저런 후속대책이 나오면서 깁고 때운 자국이 많아 정책이 누더기 꼴이 됐다.

시장이 무너 진 상황에서 회사채 부도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 주장대로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 나 급할수록 잊지말아야 하는 것은 정부 개입 방식도 시장 친화적, 전문적이 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전문가들에게 들어보면 회사채 시장에 돈도 공급하고 시장원리도 세우는 방법이 여럿 있다. (본보16일자 A7면 경제시평 참조)

그러나 정부는 국책은행이 회사채를 대신 인수해주는 '매우 단순명쾌한' 해법을 택했다'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사채를 강제 동결한 70년대 8·3조치 수준"이라는 평가까지 듣고있다. 관계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번 논의과정에서도 대통령 긴급명령 주장이 나왔다고 한다.

이처럼 무지막지한 정책이 나오는 것은 전문가들과의 사전논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 금융연구원 등 관련 전문기관을 취재해보면 "사전협의가 없었다" 언제나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한다"고 일관되게 증언한다. 금융감독위와 재정경제부의 특정부서 담당자 몇 명이 모여 앉아해법을 내고 마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이같은 밀실결정 방식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정책이 생산 공표된 후에는 비판이 가해져도 생 산자들은 자기방어에 급급하기 마련이다. 요즘 정부가 연일 보완책을 내놓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

수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수학문제의 해법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허승호<금융부>tigera@donga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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