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충식]우물 ‘밖’ 의 21세기

  • 입력 2001년 1월 12일 18시 51분


시간의 모래밭 위에서, 사람들은 날짜와 달 해를 나누어 캘린더를 만든다. 그리고 지나간 역사로 부터 배우고 반성하며, 오지 않은 미래를 예측하고 가늠해 보기도 한다. 나름대로 과거의 실패를 오늘 되풀이 하지 않고, 현재를 보다 의미있게 살아가기 위해 부심한다. 21세기의 아침 치고는 결코 상쾌하지만은 않은 오늘, 한 세기전 1901년 정초의 세계 사람들의 설레임과 이 나라 사람들의 대조적인 회한 같은 것을 돌이켜 생각해 보게 된다.

1901년 1월 일본의 호치(報知)신문에 난 기사가 재미있다. 그야 말로 100년전의 미래학이다.

▼남은 100년후 생각할때 우린 …▼

'철도의 스피드는 급행이 시속 240㎞이상으로 빨라진다. 철도의 바퀴는 고무로 바뀌고 열차는 공중과 지하로 다니게 되며 지상철은 사라지게 된다. 값싼 자동차의 보급으로 마차가 사라진다. 천재(天災)는 한 달 전에 예측할수 있고 폭풍우가 오면 대포를 쏘아 단순한 빗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사람의 키는 외과수술의 발달로 모두 180㎝를 넘길 정도로 커진다.'

'치료약을 먹는 대신 고통없는 전기침이 쓰인다. X선으로 병을 알아내고 치료한다. 개 고양이 같은 동물의 의사전달에 관한 연구가 깊어져 수어과(獸語科)가 초등학교에도 생기고 사람과 고양이 원숭이는 자유롭게 회화할 수 있게 된다. 대학교육이 보편화 되어 대학을 다니지 않으면 남녀 누구도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세상이 되고, 그런 부모의 높은 교육수준 때문에 아이들은 유치원에 다닐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물론 당대 일본의 눈높이가 아니다. 유럽과 미국의 과학기술 학문수준을 바탕으로 한 구미인의 관심사와 예측보도까지 아우른 것이다. 어쨌든 고속철도를 내다보고 그 스피드까지도 얼추 알아 맞췄다. 20세기가 자동차의 시대가 될 것임을 정확히 짚어냈다. 그러나 천재를 한달 앞서 예보하고 완벽하게 예방한다는 것은 여전히 꿈같은 얘기일 뿐이다. 또 아직도 키가 작아 고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동물과의 대화라는 것도 한낱 몽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유치원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 또한 돌이켜 보면 우스울 뿐이다.

그래도 100년 전에 한세기를 앞질러 내다보고자 하는 노력이 가상하지 않은가. 캄캄한 미래를 향해, 얕고도 짧은 테크놀러지로 예측 예언해 보겠다고, 도전장을 내미는 패기가 그럴듯 하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면 문득 그 시절 한반도 사람들의 관심사가 궁금해진다. 나라는 거의 외세의 손아귀에 떨어졌고 백성들의 삶은 처참했다. 1901년 농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활빈당이라는 무장조직을 만들었다. 이들은 게릴라전을 펼치며 관청을 습격, 관리를 살해하고 탈취한 돈을 빈민에게 나누어주곤 했다. 때로는 감옥을 부수고 죄수를 풀어주기도 했다. 활빈당은 정부를 향해 '외국에 철도 부설권을 주지 말라' '외국 상인의 출입을 금지하라' 는 반(反)외세 구호를 외쳐댔다. 미국의 스탠더드 석유회사가 부산에 지점을 낼 무렵 저장탱크부지를 내준 주민이 매국노로 몰려 살해되기도 했다는 게 바로 이 무렵이다. 1901년 한해의 기록을 살펴보면 조정은 밑에서 벌어지는 활빈당과 제주도 이재수(李在守)의 난 같은 내우(內憂)에 시달린다. 내우는 때때로 외국인 공격으로 이어져 정부의 배상책임을 늘리는식이니 외환(外患)은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와 일본에 각종 광산 채굴권이 넘어간 것도 그 해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났다. 세계화라는 말이 통용되고, 실제로 미국의 금리인하가 당장 여의도의 주가폭등으로 이어지는 국경없는 경제가 펼쳐지는 오늘날, '해외 매각 결사반대; '구조조정 절대 반대' 라는 절규를 듣게 된다. 활빈당만큼이나 비참한 처지의 노숙자들이 지하도를 떠돈다. 그러한 밑바닥의 '당연' 하고도 절실한 울부짖음은 결과적으로 대우차 문제해결을 지연시키고, 금융구조조정을 천연시켜 국가신인도를 개선하지 못하는 외환(外患)을 더욱 부추기지는 않는지.

▼"구조조정 반대" 공허한 외침▼

'20xx년=사람 물건 문화의 벽이 무너지다. 아시아의 통화가 하나가 되고, 그래서 엔화는 사라진다' 올해 1월1일자 아사히 신문의 머리기사 제목이다. 한 세기 전에 그랬듯이 우물 밖을 보는 이웃과 세계를 생각한다. 우리가 어느 세월에 '위기' 와 '벼랑' 을 면할지 모를 분노와 역겨움의 한국정치에 코를 틀어박고 감정을 불사르는 사이, 이웃과 세계는 저만치 변해가고 있지 않은가.

김충식<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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