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이정민/변화의 이정표도 제시했어야

  • 입력 2001년 1월 5일 18시 33분


새 천년을 본격적으로 맞아 21세기형 국가전략과 선진경제대국으로서의 발전 방향 등 다양한 각도에서의 미래지향적 비전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거창한 전략과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보다 단순한 차원에서의 의식 전환과 제도 개선이 전제돼야 한다.

우리 사회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선전용 위원회와 자화자찬을 위한 자문기구가 아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청와대 중앙정부 국회 정당 기업 대학 검찰 언론 등 사회의 중심적 역할을 책임지고 있는 기관들 내부의 언로(言路)를 개방하는 것이다.

국민총생산과 함께 국민정보생산(GIP·Gross Intelligence Product)을 겸비한 21세기의 국력지표를 만들어 낼 새로운 형태의 국력평가 시스템이 반드시 개발될 것이다. 세계화 정보화 다문화(多文化) 시대는 전례 없는 아이디어 경쟁을 촉진시키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이 상위 50개국 중 20∼30위에 머무르고 있는 원인은 어디 있는가? 바로 꽉 막힌 언로와 요식행위 중심의 회의문화 때문에 좋은 아이디어, 새로운 대안, 그리고 신선한 발상 등이 채택되지 못하는 데 있다. 그 결과는 국가경쟁력의 상실이다. ‘아이디어 생산라인’ 방식의 회의문화가 정착돼야 실패할 수 있는 정책을 예방할 수 있고 무제한의 아이디어 경쟁, 아니 혁명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동아일보의 신년특집 연재물 ‘변해야 산다’(1월 1∼5일자)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도층의 전면적인 자체개혁, ‘No’라고 말할 수 있는 풍토의 정착, 황제경영의 근본적 한계, 그리고 검찰의 뼈를 깎는 반성 등을 지적함으로써 ‘한국병’의 원인들을 규명해 주었다. 그러나 다음 순서가 무엇인지, 가치 박탈의 예상되는 결과는 무엇인지, 주요 경쟁국들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 국민이 어떤 목표를 향해 질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연일 국회의원 꿔주기 사건 때문에 사설(1월 1∼4일자) 또한 집권당의 작태를 개탄한 것을 이해할 수 있으나 최소한 우리가 변해야 하는 이유와 함께 정보화 세계화 시대에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더라면 하는 생각이다.

20년 후의 우리의 미래상을 그려볼 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유와 책임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적 공간의 형성이 아닌가 싶다. 21세기의 국가경쟁력은 반드시 치열한 아이디어 경쟁을 통해 창출될 것이라고 믿을 때 우리는 전례 없는 ‘문화혁명’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이미 세상이 바뀐 뒤에 투명성의 당위성을 논하고 의식전환을 구상한다면 국제사회에서는커녕 아시아 지역에서조차 일류국가로 성장할 수 없을 것이다.

[알림]옴부즈맨 칼럼 필진이 바뀝니다. 이정민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강미은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신수정 문학평론가, 성경륭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가 4월말까지 매주 토요일 차례로 동아일보 보도를 분석하는 옴부즈맨 칼럼을 집필합니다.

이 정 민(연세대 교수·국제대학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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