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규민/지자체의 복권장사

  • 입력 2000년 12월 5일 18시 51분


복권의 역사에 대해서는 설(說)이 여럿이다. 추첨으로 땅을 나눠주라는 성경의 말씀을 복권의 효시로 보는 주장도 있고 로마 초대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파티 참석자에게 선물을 추첨하여 준 것이 처음이라는 설도 있다. 근대적 의미의 복권은 1530년경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첫선을 보였는데 하수로 정비를 위해 지방 예산이 필요했기 때문에 주민에게 강제적으로 복권을 할당했다. 우리나라는 광복 직후인 1947년, 이듬해 열리는 런던올림픽에 참가할 선수들의 여비를 마련할 길이 막막한 정부가 복권을 팔아 경비를 마련했다는 눈물겨운 역사를 갖고 있다.

▷복권이 오늘날처럼 번창한 곳은 역시 거대한 자본주의 시장을 갖고 있는 미국에서였다. 1974년 이 나라에서 개발된 긁어맞추기식(스크래치) 복권은 폭발적 인기를 끌면서 복권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갔는데 미국인이 연평균 2장 이상씩 구입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소득이 투명한 이 나라에서 사회 저변층이 백만장자의 반열에 올라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으로 복권은 환영받고 있다.

▷올 5월에는 당첨금이 무려 3억5000만달러(약 4200억원)에 해당하는 ‘빅 게임 복권’의 당첨자가 등장해 미국을 온통 흥분의 도가니에 몰아넣은 적도 있다. 그러나 역대 1000만달러 이상의 복금에 당첨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당첨 후의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 64%가 이전보다 더 불행해졌다는 대답이 나온 것은 기이한 현상이다. 대부분은 자동차와 집을 바꾼 후 배우자까지 ‘바꾸는’ 과정에서 불행이 비롯됐다니 행운이란 뜻의 복권어원 로토(Lotto)와는 거리가 먼 결과다.

▷우리나라 지방자치 단체들이 복권장사에 맛을 들여 사행심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전국 16개 광역지자체가 공동으로 발행하는 ‘슈퍼 코리아 복권’이 논란의 대상이다. 그러나 미국의 예일, 하버드, 프린스턴 같은 명문대학을 탄생시키는 데 복권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를 우리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지자체의 복권 발행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돈을 어디다 쓰는지에 관한 것이다. 명색이 자기 책임하에 경제를 꾸려가는 자본주의 국가 아닌가.

<이규민논설위원>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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