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크라우스교수]"구조조정 C학점, 정부 신뢰회복 급선무"

  • 입력 2000년 11월 23일 18시 31분


“지난 3년간 외환 위기를 훌륭하게 극복한 한국경제는 다시 어려움을 만났다. 정부가 신뢰를 회복하고 노동시장이 유연해져야 한다. 국제유가가 안정될 것이므로 이제 한국경제의 사활은 한국인의 손에 달렸다. 원칙에 따라 제대로 구조조정을 하면 스스로 난국을 극복할 수 있다.”

한국경제가 새로운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샌디에이고대의 로렌스 크라우스 명예교수(사진)는 이렇게 진단했다. 크라우스 교수는 미국에서 한국경제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꿰뚫어보는 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20여년간 ‘한국 경제’를 화두로 삼아 연구활동을 해 온 인물이다. 최근 방한한 그를 만나 한국경제가 처한 상황과 개선방향 등을 들었다.

―한국경제가 새로운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97년과는 상황이 다르다. 당시는 동남아 등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함께 발생했다. 지금 상황은 한국의 국내적인 금융위기다. 한국이 IMF 관리체제 이후 이룩한 급속한 경제회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국 자체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원인은….

“위기에 대한 느낌은 다소 과장됐다. 경제는 다소 침체됐지만 한국경제는 아직 강하다. 고유가, 미국과 일본의 정치적 불안 등 외부적인 변수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다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미국과 일본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며 한국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한국의 내부 금융제도가 적절히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월스트리트에서 보는 한국경제에 대한 시각은 어떤가.

“대우자동차 부도, 현대건설의 유동성 문제로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에 투자하기를 꺼린다. 하지만 삼성 SK LG 등 좋은 평가를 받는 기업들도 많이 있다. 한국 벤처기업들의 역동성은 높이 평가된다.”

―한국의 구조조정에 대한 평가는….

“교수란 직업적 시각에서 보자면 C학점 정도다. 구조조정이 일정대로 잘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정치권의 비효율성, 관료주의, 비타협적인 노조 등 여러 요인 때문이다. 부패가 아직 뿌리뽑히지 않은 것도 문제다. 한국의 정치제도가 부패에 성숙한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지 않다고 본다. 김대중 대통령은 개혁을 이룰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있다. 다만 개혁은 신뢰를 받는 관료체제에 의해 실행되어야 한다.” 관료제도는 세계 어디에서나 개혁을 느리게 할 수 있지만 이에 위축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이 대외신인도를 높이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보다 대우자동차 문제를 신속히 해결해야 한다. 대우차 노조가 인력감축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근로자들의 권리와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노동시장은 유연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은 대우와 GM의 협상과정을 매우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현대건설이 계속 영업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다만 규모는 줄여야 한다. 또 다른 크고 작은 건설업체들이 너무 많다. 어느 나라 정부나 함께 직면하는 문제지만 강한 부분을 살리기 위해 약한 부분을 희생해야 한다. 그것만이 신뢰를 높이는 것이다. 은행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규제와 간섭도 줄여야 한다. 장기적으로 뮤추얼펀드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한국 경제의 중장기 전망은….

“한국경제는 향후 5∼10년간은 6∼7%의 성장을 할 것으로 본다. 특히 2002년부터 다시 급속한 성장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북한이 주요 변수다. 남북한 경제 통합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성장이 남한보다 빠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정부의 경제정책 과정에서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과거에는 정부 내에서도 많은 목소리가 있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재정경제부가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정리〓구자룡기자>

▼크라우스교수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오래 재직한 석학이다. 국제경제 및 금융체제에 대한 저명한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다. 특히 관세무역일반협정(GATT) 등에 관한 세계적인 권위자다.

크라우스 교수는 또 80년대 초부터 아시아 태평양 연안국의 경제성장 과정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89년부터는 대학 내에서 ‘한국―태평양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한국개발연구원(KDI) 등과 한국경제에 대한 공동 연구를 진행해 왔다. 한국에 6개월간 머물며 한국경제를 집중연구하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 ‘세계정치와 국제 경제’ ‘경제개발국의 자유화 과정’(김기환 전 KDI 원장과 공저) ‘한국 사회의 쟁점, 미국과 한국의 시각’ 등 다수. 논문은 ‘97∼98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정치 경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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