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햇빛과 세금이라는 말이 있다. 검은 돈일수록 그런 성격은 더욱 강하기 마련이다. 돈세탁은 불법자금을 합법적 자금으로 바꾸는 과정으로 가명계좌를 여러 번 거치면서 도마뱀 꼬리 자르듯 추적을 피한다는 원리다.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 은행을 몇 차례 거치다 보면 돈의 꼬리는 더욱 찾기 어렵게 된다. 돈이 예금자의 비밀을 철저히 보장하는 스위스은행으로 들어간 기록이 있으면 수사기관은 추적을 포기하는 게 관례였다. 그러나 1998년 4월 스위스가 돈세탁방지법을 실시하면서 독재자들의 비자금은 헤매기 시작했다.
▷전세계적으로 한 해에 약 1조달러(약 1120조원)의 검은 돈이 세탁된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절반은 마약이나 불법무기 거래대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해 54조원에서 169조원 정도 될 것(한국형사정책연구원 추정)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 규모를 파악할 방법은 없다. 선진국은 세금을 줄이기 위한 소득탈루가 주목적이지만 후진국에서는 뇌물이 세탁의 주대상이라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인 우리나라가 이 부문에서 후진국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뇌물이 횡행하고 있다는 징표다.
▷기록상으로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부터 추진되어 온 돈세탁방지법이 이제야 입법과정을 밟고 있다. 사회정의 실천을 위해서, 또 소득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서 꼭 필요한 법이지만 국민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정치자금이 이 법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수상한 돈을 의무적으로 신고토록 명문화하고 있지만 비정상적인 정치인의 금융거래를 신고할 수 있는 간 큰 은행이 과연 우리나라에 몇이나 될까.
<이규민논설위원>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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