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부, 현대건설과 흥정하나

  • 입력 2000년 11월 6일 19시 07분


지난달 30일 1차부도를 낸 후 유동성 부족으로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고 있는 현대건설의 위기탈출 해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정몽헌회장이 계열사 보유주식 전체를 매각하겠다고 공언하지만 앞으로 두달동안 상환해야 할 단기부채의 규모에 비하면 턱도 없는 액수다. 회사 전직 임원들을 중심으로 서산간척지 매입운동을 벌이겠다는 것도 동정은 가는 일이지만 현실성있는 대책은 못된다.

더욱 가관인 것은 정부의 태도다. 정부는 현대건설이 시장을 만족시킬만한 자구안을 내지 않을 경우 법정처리한다는 강경한 자세를 견지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주말을 지나면서 감자(減資) 및 출자전환 동의서를 거론하다가 이제는 정씨 일가의 출연을 통한 정상화로 말의 방향이 바뀌었다.

당초 정부의 방침이 그랬다면 처음부터 단계별 처리방안을 내놓았어야 했다. 반대로 시간이 지나면서 정책이 바뀐 것이라면 정부의 우유부단한 자세는 비판의 대상이다. 현대건설에 대한 대책은 이번 일이 일시적 자금부족으로 빚어진 것인지 아니면 근본적 생존조건을 갖추지 못해 일어난 일인지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통해 세워졌어야 했다.

정부가 주장하는 정씨일가의 지원문제에 대한 당국의 말도 일관성을 잃고 있다. 공정위는 과거의 계열사들이 현대건설 사채를 정당한 가격에, 적정이율로 사주는 것은 법적 하자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금감위는 그런 방법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정씨 일가의 개인적 출자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해석한다. 계열사들이 현대건설사채를 사주었다가 손실이 발생할 경우 소액주주나 외국인 투자자들이 제기할 법적 문책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다는 건지 공정위의 해석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법정관리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시장원리에 순응해 이 문제를 처리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었다면 그로부터 물러서기 위해 명분을 쌓는 어떤 흥정도 있어서는 안된다.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 그래서 금융기관에 부실채권만 안겨주는 기업은 특별히 장래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원칙대로 처리한다는 기준이 지켜져야 한다. 이 시점에서 구체성없는 대북사업은 현대건설의 장래성을 담보해줄 수 없다.

원칙수행에 따른 혼란과 고통을 몰라 철없이 던지는 말이 아니다. 구조조정에는 어떤 형태로든 희생이 수반되는 법이다. 그러면서도 해야 하는 이유는 국민경제 전체가 살기 위한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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