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미리 금을 그어선 안된다

  • 입력 2000년 10월 31일 19시 04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어제 4대 개혁 추진현황을 점검하는 자리에서 금융감독원 직원들이 동방상호신용금고 사건에 연루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부정요소를 과감히 척결할 것을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또 금감원은 명예회복 차원에서라도 금융개혁을 차질없이 추진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금감원이 엊그제 자정(自淨)결의대회를 열고 임직원의 사설펀드 가입 금지, 퇴직자의 금융기관 취업 제한 등 기강쇄신을 다짐한데 이어 김대통령이 새삼 금감원의 역할을 강조한 것은 기업 금융개혁이 그만큼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업 금융개혁이 급하다 하더라도 동방금고 사건에서 드러난 금감원의 구조적 비리를 수술하지 않고는 기업 금융개혁도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고 본다. 기업 금융 개혁은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성공할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선 금감원의 비리부터 철저히 도려내야 한다.

당연히 검찰 수사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벤처기업과 금감원의 부패고리, 거기에 영향력을 미친 정치권 인사를 밝혀내는 것은 전적으로 검찰의 몫이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한국디지탈라인 정현준(鄭炫埈)사장과 동방금고 이경자(李京子)부회장 등이 그동안 금감원에 조직적으로 로비를 했다는 의혹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금감원 직원 한 두사람의 개인적 비리가 아니라는 게 검찰의 판단인 것 같다. 임직원 상당수가 이들의 로비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검찰은 정사장이 모집한 5, 6개 사설펀드 가입자를 대부분 확인했고 여기에는 정관계(政官界)인사가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최근 검찰 일각에서 “정치인이 사설펀드에 가입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법적으로 문제되는지…” 등의 말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물론 펀드에 가입했다는 것 자체가 위법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정사장이 유력인사들에게 펀드가입을 권유하면서 손실보전을 약속하고 ‘뒤’를 부탁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검찰이 이런 것을 따져보지도 않고 정치권 수사에 미리 금을 그어선 안된다.

더군다나 로비의혹의 핵심 당사자로 수배를 받아온 장래찬(張來燦) 전 금융감독원 비은행검사1국장이 어제 자살함으로써 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그의 막다른 선택은 이 사건의 폭발성을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장 전국장의 자살로 ‘로비의 윗선’을 확인하기가 어려워졌지만 그럴수록 검찰은 성역없이 수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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