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홍/박정희와 김재규

  • 입력 2000년 10월 26일 18시 58분


25일 오후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10·26 재평가와 김재규(金載圭)장군 명예회복추진위원회 결성대회’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이 곳에서 열리는 행사는 민주화나 사회정의, 민족정기 등 지향점이 언제나 동질적이다. 김재규 전중앙정보부장이 밝힌 10·26의 동기 중 가장 명쾌한 것이 거사 후 한달반여 만에 토로한 군사법정의 최후진술이다. 그는 최후진술에서 거사 동기에 대해 “첫째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둘째 이 나라 국민의 더 많은 희생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10·26재평가 얘기가 나온 지는 오래됐지만 김재규 전중앙정보부장의 명예회복을 벌이는 단체가 공개적으로 조직된 것은 처음인 듯하다. 주최측은 결성 선언문에서 김재규를 처형했던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 등 신군부의 핵심이 사법적 단죄를 받았다는 사실에서 10·26의 역사가 재조명돼야 한다고 밝혔다. 선언문은 “박정희 추종세력들이 박정희 기념관을 건립하겠다고 하고 김대중 대통령은 국가예산으로 이를 지원하겠다고 하니 역사를 두려워할 줄 모르는 반민족적 처사”라고 비판했다.

▷다른 한편 26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서는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21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이 행사에는 김종필(金鍾泌)자민련 명예총재와 백남억(白南檍)민족중흥회장 등 공화당 정권 당시의 고위인사들이 참석했다. 전날 기독교회관에 모인 인사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길을 걸은 사람들이다. 김명예총재는 이 자리에서 “박정희 기념관 건립이 정식으로 시작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주엔 강만길(姜萬吉)고려대교수 등 대학교수 649명이 박정희 기념관 건립반대 서명에 참여해 “정부는 반민주 세력과 화해하기 위한 기념사업을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김대통령은 그 기념사업위의 명예위원장직을 사퇴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돈명(李敦明)변호사는 박정희 기념관 추진을 보고 김재규 장군의 명예회복 운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반독재 민주화세력을 기반으로 집권한 김대통령이 이들과 반대편에 서 있는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김재홍 논설위원>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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