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금융감독기능 문제없나

  • 입력 2000년 10월 22일 18시 31분


코스닥등록 벤처업체 한국디지탈라인의 정현준 사장이 일으킨 680억원대의 금융사고는 가뜩이나 허약해진 코스닥시장과 시중 자금시장에 일파만파의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여 걱정이 크다. 이번 사건은 특히 일부 벤처기업인들이 본래의 창업정신에서 벗어나 코스닥 투자에만 매달리고 과거 재벌들의 잘못된 기업확장 행태만 흉내내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비록 금융사고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지는 않지만 우리가 이번 일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는 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수도 없이 강조되어온 것이 금융개혁인데 어떻게 이런 원시적 사건이 계속될 수 있느냐 하는 점 때문이다. 특히 사장이 저지른 불법대출을 협박해 종업원들이 수십억원의 특별퇴직금을 뜯어낸 것은 금융기관 종사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어느 수준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IMF사태 발생원인 중 하나가 종금사들의 연쇄부실화에 있었고 이에 따라 그 후 제2금융권에 대한 정비가 계속되어 왔지만 이번 사건은 금융산업 환경이 그 당시보다 얼마나 더 나아졌는지 회의를 갖게 한다. IMF 이후 40여개의 금고가 퇴출될 때 대부분은 대주주에 대한 대출이 화근이었는데 그로 인한 파급 충격을 경험하고도 업계나 정부당국이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정사장이 주식을 공개 매수하겠다며 주주들로부터 주식 50만주를 끌어 모아 이를 담보로 거액을 대출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아무런 경보 혹은 규제수단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제3시장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말해주는 실례다. 고스란히 피해를 보게 된 주주들의 구제조치도 없을 정도로 제도는 허점투성이다.

금융감독원은 신용금고의 수가 워낙 많아 제대로 감독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런 사태가 속수무책으로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는가.

이번 사건의 경우 불과 열흘 전에 현장검사를 하고도 불법행위의 징후를 감지하지 못했는데 그러고도 금고 수가 많은 것만 탓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낮은 금고부터 자주 검사하면 방지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내년부터 금융종합과세와 예금부분보장제 그리고 외환자유화가 실시되는 등 규제가 크게 완화됨에 따라 금융사고의 가능성은 한층 더 높아졌다. 환경변화를 감당할 수 있도록 금융기관 감독기능의 정밀성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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