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마지막 생태 보고 'DMZ'

  • 입력 2000년 10월 22일 18시 26분


잔반(殘飯)을 내다 놓은 지 5분도 안돼 ‘꾸억꾸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곧 멧돼지 2마리와 새끼돼지가 잔반통에 모여들어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들고양이 한 마리도 나타나 그 잔칫상에 합류했다.

군사분계선과 바로 붙어있는 강원 고성군 고진동계곡은 야생동물과 군 장병들이 공생한다. 멧돼지가 잔반을 처리하는 것은 흔한 일이고 살쾡이와 산양도 종종 눈에 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강인 남강 지류에는 1급수에서만 산다는 버들개가 노닐고 있었다.

육군 뇌종부대 정명식대위는 “야생동물을 절대 해치지 말도록 교육하고 있으며 매년 4월에는 이곳 개천에 연어 치어를 방류해 북으로 넘어가도록 하는 행사도 벌인다”고 말했다.야생동물을 해치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 군부대 징크스까지 일조해 이곳 비무장지대는 산양(천연기념물 제217호), 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1호)등 야생동물의 천국으로 보존되고 있다.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의 식생에 있어서도 비무장지대는 소중하다. 비록 군사경계상의 필요 때문에 공동경비구역의 울창한 숲은 벌채됐지만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만큼 수많은 자생식물이 번성하고 있다.

그중 ‘살아있는 자연사 박물관’으로 불리는 곳은 대암산 정상부근 해발 1280m에 위치한 용늪이다. 97년 람사협약(습지보존 국제협약)에 가입한 이곳은 4500년에 걸쳐 형성된 천연습지다.

현재 육화(陸化)가 상당히 진척되어 원래 크기의 절반 가량인 6970㎡정도가 늪지를 유지하고 있다. 이곳은 191종의 습지식물과 234종의 곤충, 그리고 다수의 양서류와 파충류가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 한발 내디뎌 밟아보면 마치 침대 위를 걷는 듯 푹신하다. 분지 지형과 춥고 습한 기후 때문에 물기가 흘러나가지 않고 고였기 때문.

그러나 1977년 인근 군부대의 스케이트장 건설로 인해 용늪은 크게 훼손됐다. 늪지의 숨구멍이 토사에 막혀버려 여기저기 물길이 났다. 육지식물인 사철나무가 곳곳에 솟아났고 모래가 물길을 따라 밀려서 쌓이고 있었다. 4500년의 세월이 한순간에 허물어지고 있는 것.

올해 시작된 용늪 복원공사를 책임지고 있는 현대건설 박성희(朴聖熙)박사는 “우선 현재의 토양환경을 모니터하고 물길을 분산시키면서 더 이상의 훼손을 막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위기를 맞고 있는 곳은 용늪만이 아니다. 경의선 철도와 남북연결도로 공사 등 통일 열풍으로 인한 비무장지대 훼손은 이미 위험수위에 달했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안창희(安昌熙)경기북부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야생동물의 이동경로조차 파악하지 않은 채 현재 지뢰 제거 명목으로 폭 10m의 땅을 마구 갈아엎고 있다”며 “공사현장에서 능구렁이 허물이 발견되는 등 생태계 파괴가 가시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환경부도 지난달 비무장지대를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하는 등의 접경지역 난개발 방지계획을 발표했으나 내년 완공을 목표로 강행하고 있는 경의선공사 등 통일사업에 브레이크를 걸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평가다.

서울대 산림자원학과 김성일(金星一)교수는 “출입금지를 통한 환경보전정책은 이제 한계에 부닥쳤다”며 “환경보전을 통해 지역주민들도 돈을 벌 수 있는 생태관광사업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성·양구〓김준석기자>kjs35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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