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에는]성병조/창녕 양파의 명성 되살리자

  • 입력 2000년 10월 19일 18시 47분


경남의 북부와 대구 그리고 마산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창녕만큼 자랑거리가 많은 곳도 드물 성싶다. 진흥왕 순수비와 석빙고, 가야시대 고분군 등 각종 유적과 문화재가 즐비해 ‘제2의 경주’로도 불린다.

이름난 창녕 단감도 자랑할 만하지만 누가 뭐래도 창녕은 양파로 가장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양파가 우리의 식탁을 꾸미는 필수 반찬이 되기까지의 역사가 창녕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양파를 일본에서 처음 들여와 재배한 곳이 바로 창녕이다.

6·25전쟁 이후 농촌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살기 힘든 형편이었다. 이 때 창녕군 대지면 석리 출신의 성재경(成在慶)씨가 일찍 신학문을 터득한 뒤 농촌의 소득증대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찾다가 53년 일본에서 양파 씨앗을 구해 와 고향 일대에서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 국내 양파 재배의 효시다.

보리농사만 지어온 농민들은 당시 가격으로 환산해 10배 이상 수익성이 높은 양파 재배 기술을 익히기 위해 노력했고 성씨는 양파 재배기술을 보급하기 위해 63년 경화회를, 68년 창녕양파조합을 설립했다. 70년대만 해도 국내 총 양파생산량의 35% 이상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전국에 널리 파급돼 98년 기준으로 전국 생산량의 7.6%인 6만6000t이 창녕에서 생산됐다.

이 같은 양파는 향토민의 땀과 애환이 함께 깃든 창녕의 상징이요, 가난에 찌든 한국 농촌을 획기적으로 변모시킨 촉매제라고 할 수 있다. 92년 8월 대지면에 설립된 전국 최초의 양파시험장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결코 여기서 그칠 수는 없는 일이다.

피폐한 농촌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운 양파의 위력을 대외에 과시하고 창녕이 한국 양파의 메카임을 알리기 위해 창녕 진입로에 양파조형물을 세우고 양파 도입의 유래를 자세히 적어 후세에 알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대지면에 있는 지금의 양파시험장을 적절히 활용하고 이곳에 양파기념관을 세우는 일도 고려해 볼만하다.

성병조(재대구 창녕향우회 감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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