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미술대전 무용론

  • 입력 2000년 10월 9일 19시 22분


불신과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은 문화계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신인 화가들의 등용문으로 통하는 대한민국미술대전은 과거 국전(國展)의 전통을 이어받은 권위 있는 행사이지만 심사 결과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잡음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행사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전횡과 비리를 일삼는다는 것이다. 특정 대학 출신만 수상자로 뽑는다거나 상을 받기 위해 돈이 건네진다는 얘기도 나왔다. 구체적인 근거가 있는 게 아닌데도 이런 ‘말’들은 꽤나 설득력을 갖고 입에 오르내리곤 했다.

▷최근 미술대전에서 두 건의 비리가 드러났다. 그 중 하나는 심사위원에게 돈을 주고 상을 받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행사를 주관하는 한국미술협회 간부가 미술대전 운영위원 선정과 관련해 돈을 받은 것이다. 이 사례들은 미술대전과 관련해 무성했던 ‘음모론’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임을 보여준다. 그동안 ‘결백’을 주장해온 주최측도 할말이 없게 됐다.

▷따지고 보면 미술대전에서 상을 받는 것은 화가로서 실력을 인정받는 여러 방법 중 한가지일 뿐이다. 세계적인 화가들이 공모전에서 상을 못받아 ‘출세’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미술대전에 대한 불신과 음모론은 역설적으로 말해 미술대전에서 상을 받으려는 화가지망생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술대전이 그토록 비리의 온상이라면 화가들이 왜 보이콧을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직도 실력보다는 수상경력 등 외형적인 것을 중시하는 한국적 풍토 때문일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의문은 이런 식의 미술대전이 꼭 필요한가 하는 점이다. 미술대전 무용론이 제기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선진국에서도 미술대전과 같은 공모전은 사라지는 추세다. 예술에서 일회적인 경쟁 방식으로 우열을 가리는 것은 극히 비문화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적인 것이 한가지 있다. 미술대전에서 상을 받았다고 해서 꼭 미술시장에서 인정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미술대전을 거치지 않은 화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우리 문화계도 차츰 제자리를 잡아가는 것일까.

<홍찬식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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