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책 '부실'은 책임없나

  • 입력 2000년 10월 8일 18시 36분


공적자금을 받은 부실 금융기관의 임직원이 철퇴를 맞게 됐다. 무려 1009명이 형사고발되는 등 책임추궁을 받게 된 것.

이 가운데 721명은 자칫 잘못하면 재산을 날리고 쪽박을 차야 할 판이다. 3947억원의 민사소송에 걸렸기 때문이다.

공적자금을 추가조성하면서 부실 책임자에 대한 추궁은 이처럼 가혹하다.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는 40조원의 공적자금이 필요한 계획을 발표한 뒤 부실책임자들을 준엄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 책임추궁 플랜에 정책실패를 문제삼는 대목은 단 한곳도 없다.

곰곰이 따져보자. 은행부실에 과천관가의 책임은 과연 없을까. 형사고발된 한 은행 임원은 “관료로부터 대출청탁을 안 받은 은행임원들이 과연 몇이나 되느냐”고 볼멘소리로 항변한다.

정부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금융기관을 갖고 놀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은행임원이 되려면 과천의 ‘속내’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했다.

‘돈먹는 하마’로 불린 투신사를 보면 기가 막힌다. 8조원의 국민혈세를 삼킨 한투 대투 경영부실은 오로지 ‘형편없는’ 경영능력 때문인가. 정부는 한투 대투 경영진으로 항상 고위 공무원을 내려보냈다. 인사적체 해소용으로 자리를 이용했고 증시상황에 따라 ‘주식을 사라, 팔아라’ 전화공세를 해댔다.

물론 그렇다 해서 금융인들에게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부실을 조장한 정책당국자들은 무풍지대에 앉아 있으니 형평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보철강과 대우자동차 매각실패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도 희생양으로 민간인들이 주로 거론되고 있다. 재경부 한 관리는 “정부가 하는 일은 감사원이 상시 감시하고 있다”고 둘러댄다. 너무 옹색한 변명으로만 들린다.

<최영해 금융부>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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