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벤처기업 '안띠꾸스'사장 김준목씨 고서적상 변신

  • 입력 2000년 9월 26일 18시 28분


첨단을 좇던 30대 벤처인. 그가 어느날 서양의 고서(古書)에 미치더니, 아예 고서점을 차렸다. 그리곤 희브리어 라틴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번엔 영국에 가서 고고학을 공부할 계획까지 세웠다.

새로운 ‘느림’의 삶에 눈 떠가는 사람, 한국의 서양고서적상 1호 김준목씨(38). 7월 개설한 서양 고서 전문사이트 ‘안띠꾸스’(www.antiquus.co.kr)의 사장이다.

김사장은 스티커사진 촬영기 등을 수출해, 돈도 웬만큼 번 성공 벤처인이다. 그가 왜 이렇게 정반대의 삶에 빠져든 것일까.

김사장이 서양 고서를 처음 만난 것은 1980년대말. 무역회사 직원이었던 그는 유럽 출장을 가면 짬을 내 벼룩시장이나 고서점을 즐겨 찾았다. 그러던 중 1993년 이탈리아 로마의 길거리에서 한 고서 노점상을 만났다. 그 노점상은 화가이기도 했다.

“그를 자주 만나면서 책 얘기, 그림 얘기를 했죠. 어느날 하루 온종일을 그 사람과 함께 지냈는데 이탈리아의 유명 인사들이 많이 오더군요. 지휘자 정명훈씨도 거기서 책을 사갔습니다.”

그 때부터 고서에 빠졌고 그 고서적상에게서 열심히 책을 사들였다. 좀 익숙해지자 그를 따라 이탈리아 각지를 돌면서 책을 구했다. 르네상스시대 책들이 주종이었다. 레오나르도다빈치의 스케치 원판과 같이 귀중한 것도 적지 않았다.

“한번은 그 고서적상이 오스트리아 황제가 보았다는 성경(1573년)을 보여 주었습니다. 가격을 물어보니 우리 돈으로 2000만원이었습니다. 당장 사지 않으면 책을 놓칠 것 같아서, 한국에 가서 송금해주겠다고 했더니 저를 믿어 주더군요.”

그가 지금까지 구입한 서양 고서는 2000여권. 돈으로 치면 서울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은 족히 된다. 책을 들여와 선물도 하고 알음알음 팔기도 했다.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았고 문화적인 분위기도 좋았다. 그래서 아예 그 길로 나서 인터넷사이트 ‘안띠꾸스’를 만든 것이다. 이 사이트엔 16세기의 인문 건축 예술 과학서 1400여권이 소개되어 있다.

“인사동의 할아버지들께서 격려도 많이 해주십니다. 지치지 말라구요.”

김사장은 8월 웹진도 창간했고 얼마 전엔 고서 전시회도 가졌다. 중요한 고서를 번역해 책으로 낼 계획도 갖고 있다.

요즘엔 우리 고서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쓰레기 분리수거 하는 날 밤이면 아파트 단지를 돌며 고물 더미에서 ‘보물’을 찾고 다닌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주변에 널려 있으니, 행복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엔 여유가 가득했다.

원래 그림 역사 문명사 등을 좋아했으나 ‘성적이 안돼’ 화학과에 갔다는 김사장. ‘디지털은 아날로그의 한 표현’이라는 깨달음으로, 원래의 꿈을 되찾아가고 있다.

2000만원짜리 성경책이 궁금했다.

“누군가 1억원에 팔라고 하더군요. 팔 생각이 없습니다. 저의 분신이니까요.”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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