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못말리는 조기유학

  • 입력 2000년 9월 19일 19시 14분


자식 키우는 일도 ‘정보(情報)’전이다. 아이를 낳자마자 어떤 분유가 좋은지 수소문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피아노를 시킬 것인지 태권도를 시킬 것인지, 유치원은 또 어디로 보낼 것인지 하는 문제 등 중요한 고비마다 어머니들은 정보를 얻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운다. 인간의 가장 성스럽고 본능적인 행위인 자식교육에서도 이처럼 정보가 위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면 요즘이 정보사회는 정보사회인 모양이다.

▷자식교육에서 정보싸움의 극치는 대학입시에서다. ‘족집게 선생’을 찾아 수능 점수를 올리는 것은 가장 결정적인 정보가 아닌지 모르겠다. 원서 접수 때 벌어지는 ‘눈치작전’도 정보싸움의 하나다. 2002학년도 입시부터는 정보가 더 중요하게 되어 있다. 무시험전형 도입으로 정확한 입시정보를 갖고 대비한 수험생들이 매우 유리하기 때문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조기유학 문제나 외국인학교의 내국인 입학 문제에서도 자녀교육을 둘러싼 치열한 정보전을 실감할 수 있다. 조기유학을 어떻게 가는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 상당수인 반면 현행법상 불법인 조기유학을 벌써 오래 전부터 ‘감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외국인학교에 한국 학생들이 많이 다닌다지만 외국인학교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다. 이들로서는 이런저런 문제를 떠나 학부모들이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자녀를 조기유학 보내고, 외국인학교에 보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교육문제에 관한 한 다들 전문가인 한국의 부모들 사이에도 ‘프로’와 ‘아마’가 구별되는 것일까.

▷지난 주말 서울 강남에서 열린 해외유학박람회에는 조기유학 희망자 등 3만명의 인파가 몰렸다는 소식이다. 정부가 조기유학을 계속 규제하고 있는데도 이를 비웃듯 행사가 성황을 이룬 것을 보면 교육정책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신과 불만이 대단함을 느낄 수 있다. 정부의 조기유학 정책과 상관없이 학부모로서 유학 갈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해 보겠다는 뜻이리라.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역시 교육 정보에 대한 학부모들의 갈망이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데는 ‘실력’ 못지않게 ‘정보’도 중요함을 학부모들 스스로 절감하기 때문은 아닐까.

<홍찬식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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