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담론]올림픽은 화합-공존의 축제

  • 입력 2000년 9월 18일 18시 21분


아테네에서 시드니까지 성화가 올림픽 성화봉송 사상 최장거리인 6만1500km를 돌아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의 성화대에 오를 때 마지막 주자로 등장한 것은 호주 원주민 출신 여자 육상선수 캐시 프리먼이었다. 마지막까지 베일에 가려졌던 성화 최종주자가 애보리진(호주 원주민)이란 사실에 잠시 놀란 사람들은 그의 등장 직전 개막축전에서 화려하게 군무를 펼쳤던 애보리진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됐다. 프리먼은 1994년 영연방대회 육상 400m에서 1위로 들어온 뒤 원주민 깃발을 들고 행진했던 선수였다.

18세기 말 영국 제임스 쿡 선장의 함대가 호주에 들어온 후 호주의 주인이었던 애보리진은 이방인인 백인들에게 점점 밀려나 거리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이제 약 1900만 호주 인구의 2%밖에 안 되는 이들이 주최국의 문화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올림픽 개막행사의 태반을 담당했다는 것은 의외의 일이었다.

◇인종초월 '인간승리'에 환호◇

사상 이념 체제 종교 인종을 초월해 세계 평화와 인간 완성을 추구한다는 올림픽. 스포츠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올림픽은 국가나 민족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잠시 접고 가장 적나라한 ‘몸’의 부딪힘을 통해 화합을 모색하는 자리다. 본래 스포츠란 자연 속에서 또는 타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경쟁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이제 생존을 위한 싸움이 주로 두뇌를 통해 이뤄지는 세상에서 몸은 오히려 원시적 순수함을 간직한 결정체가 됐다. 인간에게서 육체의 역할은 줄어들고 두뇌의 사용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은 머리만 커지고 몸의 나머지 부분이 퇴화해 가는 인간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샌디에이고) 생물학 교수인 클리스토퍼 윌스가 주장하듯이 인간만이 유독 빠른 진화를 통해 자연의 진화속도를 추월해 왔다면, 이제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새로운 환경 속에서 여전히 빠른 속도로 진화하며, 때로는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진화를 조작하기도 한다.

◇세계곳곳의 '프리먼' 꿈꾼다◇

하지만 1894년 ‘몸’이 부딪치는 스포츠를 통해 인간의 화합을 도모하자던 피에르 드 쿠베르탱남작의 제안은 현명한 것이었다. 호주의 원주민도, 양말도 못 신고 연습했다는 에티오피아의 육상 영웅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도 첨단 스포츠과학으로 무장한 선진국 선수들과 동등하게 만나 기량을 겨룰 수 있다. 인간 중에서도 가장 빠른 진화를 했기에 다른 인종을 지배한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백인들도 올림픽에서만은 인종을 초월한 ‘인간의 승리’에 환호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의 육체가 퇴화해 가리라는 사람들의 주장과 달리 인간은 스포츠를 통해 육체의 한계를 끊임없이 돌파하며 신기록을 갱신해 왔다. 물론 이런 기록을 세우는 운동선수는 건강한 육체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인간 한계의 극복을 위해 건강한 육체의 희생을 감수한 자이기도 하다. BC 490년 아테네군이 페르시아 대군을 무찔렀다는 승전보를 전하러 약 40㎞를 달려 온 병사가 ‘우리 군대가 승리했다’는 한 마디를 남기고는 숨을 거두었고 이것이 마라톤의 기원이 됐듯이, 이들은 온몸을 던져 인간의 한계극복 의지를 실천한다.

이념적 대립이 퇴조한 21세기 첫 올림픽에서 호주인들은 이런 용기 있는 ‘인간’에게 찬사를 보내며 세계인뿐 아니라 애보리진과의 평화와 화합,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존을 추구하는 축제를 만들고 있다. 성숙한 인간들은 ‘몸’의 경쟁을 통해 생존경쟁의 위대함과 잔인함을 즐기는 대신, 인간의 존엄함을 확인하며 세계 곳곳의 ‘캐시 프리먼’들이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꾼다.

(철학박사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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