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별'이 된 황순원씨의 삶

  • 입력 2000년 9월 15일 18시 31분


원로작가 황순원씨의 타계로 우리는 큰 별을 잃었다. 그는 20세기 우리 문단에서 순수와 서정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어린 시절 교과서에 실린 그의 소설 ‘소나기’를 읽고 느낀 감동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다. ‘소나기’는 그가 이뤄놓은 문학적 성과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는 대다수 국민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몇 명 안되는 문인이다. 그는 ‘국민작가’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는 그가 남긴 문학세계 이외에 그가 지나온 80여년이라는 짧지 않은 생애를 새삼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그가 우리와 동시대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방식이나 인생철학이 요즘 사람들과 너무도 대비되기 때문이다. 그는 문학에서 고집스럽게 문학의 본질을 추구하는 순수문학에 매달렸으며 실제 삶에서도 똑같은 ‘순수’의 길을 걸었다.

그는 오직 ‘작가’로만 살기 위해 세속적인 명예와 감투를 마다했다. 예술원 회원과 교수라는 직함말고는 관직도, 박사라는 칭호도, 훈장도 모두 사양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는 신념 때문에 시와 소설 이외에 다른 글은 일절 쓰지 않았다. 신문사가 주최하는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오랜 기간 활동했지만 자신의 제자라고 해서 절대 봐주는 일이 없었으며 오히려 제자라는 이유로 당선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요즘 세상은 어떤가. 물욕 명예욕 등 온갖 욕심과 위선,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정치권을 비롯한 모든 집단이 거의 예외 없이 저마다의 이익과 욕심을 챙기고 좇느라 어지럽고 혼탁하다. 좀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 어둡고 캄캄한 ‘혼돈의 시대’에 한 시대의 탁월한 문인으로서 원칙과 소신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그의 삶은 더욱 빛을 발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우리에게 문학은 존재하지만 문학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 주변에는 훌륭한 문인의 업적과 삶을 기리는 자료관이나 기념관을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황순원씨의 경우 그의 육필 원고라든지 집필실 등을 그대로 보존해 후대에 남기는 작업이 추진되었으면 한다. 그것은 그동안 잊고 살아온 ‘순수의 시대’를 자신의 문학과 인생을 통해 우리에게 일깨워 준 위대한 문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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