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페르몬 향수 국내에도 등장

  • 입력 2000년 9월 13일 18시 39분


국내에서도 최근 인터넷 성인용품 사이트나 통신판매를 통해 페로몬 향수가 등장하고 있다. 남대문시장이나 용산상가 주변의 노점상에서도 페로몬 향수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어떤 물질이 페로몬으로 쓰였는지는 판매자들도 모르고 있다.

또 외국의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인간페로몬’이 들어있다는 향수선전이 요란하지만 실제로는 돼지페로몬인 안드로스테논을 섞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주장이 나온 것은 이 물질이 사람의 땀과 오줌에서도 발견됐기 때문.

사실 향수에는 오래 전부터 페로몬이 쓰여왔다고 할 수 있다. 향수의 원료인 동물성 향료에는 그 동물이 분비하는 페로몬이 섞여있다. 조향사들은 오랜 경험으로 동물성 향료가 들어가야 향이 섹시해진다는 사실을 잘알고 있다.

대표적인 동물성 향료로는 사향을 들 수 있다. 사향노루 수컷은 발정기가 되면 생식선에서 사향을 분비한다.

한불화농 향료연구소 수석조향사 이승훈 소장은 “사향노루의 남획이 금지된 오늘날 향료업계에서는 사향의 핵심성분인 머스콘을 합성해 쓰고 있다”며 “고가이지만 향기에 매력과 깊이를 주는데는 이만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사향고양이의 생식선에서 분비되는 시벳도 고급향수를 만들 때 없어서는 안될 원료이다.

흥미롭게도 머스콘이나 시벳의 주성분인 시베톤의 분자구조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비슷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향이나 시벳이 여성의 생리주기를 변화시킨다는 관찰결과도 보고된바 있다. 최재천 교수는 “노루나 인간은 모두 포유류에 속한다”며 “진화 상으로 그렇게 멀지 않은 한 종의 페로몬이 다른 종에서도 비슷한 작용을 한다고 해서 그렇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철학자 칸트는 고상한 인간이 냄새처럼 천박하고 동물적인 것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어떠한 암시도 비난했다. 그에게 후각은 “모든 감각 중에서 가장 불필요하고 불쾌한 감각”이었다. 그런 그가 오늘날 날로 번창하는 향수산업을 바라본다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강석기 동아사이언스기자>alchimist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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