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브리타니쿠스' 역동적 연기로 무대 달궈

  • 입력 2000년 9월 7일 18시 50분


프랑스 다니엘 메스기슈가 직접 연출한 장 라신느의 비극 ‘브리타니쿠스’.

휴식시간도 없이 2시40분을 내달린 이 작품은 시종 인간의 내면을 날카롭게 들여다본 진지함이 돋보이는 무대였다.

재위 첫 5년을 ‘네로의 다섯해’라고 불릴 정도로 선정을 이끌었다는 네로(이상직 분). 이 작품은 네로가 클라우디우스황제의 친아들인 이복 동생 브리타니쿠스(노석채)의 연인 주니아(계미경)를 사랑하면서 광기로 치닫는 과정을 담고 있다.

메스기슈는 대칭형으로 짜여진 캐릭터와 무대를 통해 인간의 심연에 가라앉아 있는 본성들을 차례로 끄집어낸다. 질투 욕망 의심 수치 반성 자기혐오….

무대 위 X자형의 붉은 선은 ‘조명 길’과 배우들의 동선으로 활용되면서 네로와 그의 모후인 아그리피나, 네로와 브리타니쿠스, 충신 브루스와 아그리피나 등 장면마다 각기 대립되는 본성을 상징하는 인물들의 갈등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배우들의 그 역동적인 움직임이 없었다면 국립극장의 그 넓고 깊은 무대는 한없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메스기슈의 가장 큰 미덕은 인간 사이의 갈등을, 다시 인간 내부로 끌어들인다는 점이다. 아그리피나(조은경)와 그의 곁에서 같은 몸짓으로 입만 벙긋거리는 하녀 엘비나의 모습은 이중적인 인간을 그려낸다.

네로의 광기와 타락이 그의 ‘나쁜 피’로 예정된 것이었다면 그것은 비극적이지 않다. 나약해보이기까지 하는 사랑의 숭배자, 모성을 두려워하는 나약한 아들, 누구보다 탐욕스러운 권력자. 끊임없이 갈등하고 흔들리는 네로의 모습이기에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찰이 가능할 것이다.

이상직은 적어도 무대에서만은 AD 60년대의 네로였다(그 네로도 서기 64년 연극에 정식으로 출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배우).

아쉬운 것은 고르지 않은 배우들의 역량이 수사로 가득찬 라신느 작품의 진수를 전달하는 데 장애물이 됐다는 점이다. 10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02―2274―1151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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