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상식/지도자들 지구촌차원 비전 갖춰야

  • 입력 2000년 9월 7일 01시 15분


150여개 국가 및 정부 수반이 한 자리에 모여 세계의 장래를 논의하는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이 모임을 필요로 한 것도, 이를 가능케 한 것도 세계화라고 하겠다. 세계화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바탕으로 한 인류공동운명체의 필요성과 가능성도 높였지만 국내 및 국가간 분쟁과 갈등, 그리고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환경 전염병 난민 등 세계 공통의 문제를 증대시켰다.

이들 문제는 유엔의 각종회의에서 계속 논의돼 왔고 해결책에 대한 많은 결의문도 통과됐다. 그러나 아직 문제 해결에 큰 진전이 없었다. 각국이 국가 중심적 시각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선후진국 사이에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쟁은 국내분쟁과 국가간 분쟁으로 나눌 수 있는데, 국내분쟁이 국제분쟁화하는 경우도 많다. 국내분쟁은 주로 후진국에서 일어나며, 인종 종교 지역간 갈등이 대부분이다. 이런 갈등은 한 집단의 다른 집단에 대한 인권침해, 차별대우 때문에 주로 일어난다. 따라서 국내분쟁의 책임은 정치지도층에 있다고 할 것이다. 물론 선진국 중에는 자신에게 적대적인 정치집단이 집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국내분쟁에 개입하는 국가도 있다. 빈부격차도 국내의 빈부격차와 국가간 빈부 차이로 구별되는데 후진국 지도자는 국가간 빈부 차이만 비난하고, 국내 빈부 차이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선진국에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 선진국은 국가간 빈부 차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책임이 있지만 후진국 내의 빈곤과 빈부 차이에 대한 책임은 후진국 지도자가 주로 져야 한다. 환경문제도 이제 누가 책임이 있느냐를 논의할 때는 지났다. 모든 국가가 공동 노력하지 않으면 인류공동재산을 보호할 수 없다.

해결책은 국가 단독, 국가간, 그리고 국제기구라는 세 차원에서 추진돼야 할 것이다. 첫째, 각 정부는 자기 나라를 잘 다스려야 한다. 후진국에는 정부는 있어도 다스림(governance)은 없는 경우가 많다. 빈곤이나 인권침해 등은 정치불안을 가져온다. 정치지도자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둘째, 우호관계에 있는 국가들은 경제교류 증진, 환경훼손 등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기구 발전이 촉진돼야 한다. 셋째, 유엔 및 유엔전문기구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 이들 과제를 해결하는데 유엔이 범세계적 차원에서 보다 공정하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엔 체제가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후진국의 수의 다수에 의한 독재도 피해야 하지만, 선진국의 부와 권력에 의한 독재도 피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유엔 체제의 개혁이 시급하다. 결국 국가도 국제기구도 사람이 다스리는 것이므로 이 다스리는 사람들이 세계화시대에 부응해 세계공동체 의식을 배양하는 것이 급선무다.

21세기 유엔 정상회의의 의의는 바로 여기서 찾아야 한다. 지도자는 이제 국가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인류공동체 구축이라는 장기적 비전을 갖고 문제에 접근할 때가 됐다.

박상식(전 외교안보연구원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