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金대통령의 안이한 현실인식

  • 입력 2000년 9월 4일 19시 14분


한나라당이 장외투쟁에 나섰다. 반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민주당은 야당의 공세에 조금도 밀릴 수 없다는 강경 자세다. 모든 문제를 ‘국회에서 원칙대로’ 풀자는 것이다. 우리는 국회가 국정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야당은 가능한 한 장외투쟁을 자제할 것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김대통령과 여당이 말하는 ‘일방적인 국회내 원칙’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김대통령은 엊그제 방송 3사와의 대담에서 “정치가 제대로 안풀리고 있다”고 자탄했다. 그런데 그 ‘자탄’에는 정치가 안풀리는 이유에 대한 자기 성찰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해법을 야당에 대한 강공에서 찾으려는 것 같다. 이같은 대통령의 태도는 정치현실에 대한 안이한 인식의 결과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야당의 발목잡기식 투쟁 행태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현재 야당이 장외투쟁의 이유로 내세우고 있는 사안에 비춰볼 때 정부 여당이 책임의식을 보이기는커녕 합리적 대응책조차 제시하지 않은 채 ‘국회내 원칙’만을 내세우는 것은 억지라고 본다.

우선 여당 지도부의 선거비용 실사 개입 의혹을 ‘실언’으로 묻어버릴 수 있는지 다시 묻고 싶다. 당의 조직업무를 총괄해온 사무부총장이 그렇게 민감한 사안을 실수로 말했다고 믿을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국정조사든 특별검사제든 의혹을 풀 수 있는 대책을 제시하고 야당과 협의하는 것이 순리다. 야당이 주장한다고 무조건 정치공세로 치부하는 것은 결코 상생(相生)의 정치라고 할 수 없다.

김대통령의 생각은 국회 국정감사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굳이 국정조사나 특검제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 같다. 그러나 국정감사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있고 그렇지 못한 사안이 있다.

김대통령은 국회파행 사태와 관련, “(국회는) 합의가 되면 만장일치로, 안되면 표결로 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회 파행을 부른 국회법 날치기는 절차의 문제 이전에 총선 민의를 왜곡하는 근본적인 문제다.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형식만을 강조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더구나 날치기는 어떤 이유로든 용납될 수 없잖은가.

사정이 이러한데도 김대통령이 총재인 민주당은 전당대회를 치른 후에도 자기 반성에 따른 내부쇄신 노력도, 정국경색을 풀려는 적극적인 의지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여권은 야당의 장외투쟁만 나무랄 게 아니라 자기들이 저질러놓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 내치(內治)가 바로 서지 못하면 남북문제의 성과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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