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윤득헌/파이팅 이형택

  • 입력 2000년 9월 3일 18시 57분


박세리선수가 2년전 미국 여자프로골프 대회에서 4차례나 우승하자 한쪽에서는 이런 분석을 했다.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손을 쓰는 장장근이 잘 발달해 있고 국제경기에서 한국이 우승한 경기의 90% 이상이 손을 주로 쓰는 경기’라는 것이었다. 박세리의 우승은 그의 노력과 훈련에 의한 것이지만 우리 민족의 특성과도 연관이 있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스포츠가 손을 위주로 하는 것임에 비춰보면 참 이상한 분석이었다.

▷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여성은 스포츠에서 남성보다 낫다’라는 분석은 훨씬 믿을 만하다. 남녀가 같이 하는 종목들의 기록을 살펴보면 ‘그럴 듯하다’는 말이 나옴직하다. 세계탁구에서 여자팀이 정현숙 이에리사 주축으로 우승한 ‘사라예보의 영광’은 1973년의 일이었다. 양궁의 김진호 선수가 세계선수권을 석권하고, 배드민턴의 황선애가 영국오픈에서 우승한 것은 1980년대 초였다. 박신자선수 주축의 농구팀이 세계대회에서 준우승한 것은 1967년이었다.

▷ 우리 테니스선수들이 세계 대회에서 우승한 적은 없다. 그래도 우리를 놀라게 한 적은 있다. 물론 여자선수였다. 라켓 하나 들고 ‘외로운 집시’처럼 세계를 노크했던 이덕희선수다. 그는 1981년 US오픈 단식경기에서 16강전까지 올랐다. 박성희선수도 있다. 1995년부터 지난해까지 15번이나 4대 메이저대회에 출전해 늘 초반 탈락했지만 그의 1995년 세계랭킹은 57위였다. 아무튼 늦기는 해도 우리 남자선수가 여자선수들 못지 않은 성적을 내고 있어 흥미롭다.

▷ 이형택선수가 남자 테니스를 단숨에 화제의 가운데로 끌어올리는 큰 일을 했다. 그가 US오픈에서 세계랭킹이 100위 이상이나 앞서는 선수를 3명이나 꺾고 16강에 오른 것은 코치에게도 의외였나 보다. 부랴부랴 호텔예약도 연장했다는 것이니, 테니스 팬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예선통과선수가 이변을 연출했다’고 관심을 보였던 외신기자들도 급기야 한국어 통역을 구하느라 법석을 떨었다고 한다. 16강전에서 세계 최강 피트 샘프러스와 맞서는 그의 경기를 지켜보자.

<윤득헌 논설위원>dhyo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