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원기/코스닥시장 제2도약 위한 반성

  • 입력 2000년 9월 3일 17시 08분


올 1·4분기까지만 해도 벤처열풍과 코스닥시장 활황은 21세기 한국경제의 희망을 알리는 깃발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덧 걱정거리로 전락했다. 정부의 부양책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이니 세상이 빠르게 변한 탓인가, 아니면 모두 신기루에 홀렸던 것인가.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던 것일까. 잘못은 기업과 투자자 등 시장 참여자들에게서 찾아야 한다.

벤처와 코스닥열풍은 시대정신의 산물이었다. 대규모 설비산업과 재벌로 대표되던 한국경제가 지식과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재편되는 산업구조 조정의 첨병이 벤처인 것이다. 그들은 기존의 거대기업과는 달리 기술력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모험적 기업가들이었다. 이윤보다는 성취동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 독점보다는 나누고 베푸는 '네트워크 정신'에 충만한 그룹들이었다. 기존의 거대기업 문화에 식상한 투자자들이 열광하며 벤처기업 주식을 높은 값에 사줬던 것은 당연했다. 그것은 투자의 새로운 대안이었고 지평이었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었을까. 코스닥시장 폭등은 여러 부작용을 잉태했다. 많은 벤처기업이 일확천금을 노려 코스닥으로 몰려왔다. 자본 이득을 위해 코스닥에 등록하려는 풍조가 만연했다. 코스닥시장의 성격에 부합하지 않는 대기업들까지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해 등록하는 사례도 많았다.

이른바 백도어 리스팅(Backdoor Listing) 이라는 인수합병을 통한 변칙상장과, 외자유치라는 명분을 앞세운 해외 전환사채의 헐값 발행이 유행하면서 주식의 공급은 증가하고 주식 가치는 희석됐다. 일부 코스닥기업은 무상증자와 액면분할, 설익은 신사업 계획 발표를 무기로 단기적으로 주가를 올리는데 급급했다. 뚜렷한 투자계획도 없이 경쟁적으로 유상증자에 나서는 등 자금확보에도 바빴다. 이렇게 쉽게 조달된 자금은 이해할 수 없는 다각화와 몸집 불리기에 사용됐다.

이제 엄청나게 늘어난 유통주식 물량은 부메랑 이 돼 코스닥기업에 돌아가고 있다. 벤처기업들도 기존의 거대기업과 다른 참신성을 더 이상 보여주지 못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시장은 벤처기업에는 우리 경제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매우 높은 수준의 사명감과 비전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계속되는 불공정행위와 내부자거래 의혹, 또 일부 초단기 투자자들에 의해 전자오락 수준으로 전락한 매매행태는 코스닥시장에 대한 마지막 신뢰조차 무너뜨려 정통 투자자들이 완전히 외면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벤처와 코스닥시장은 버블(거품) 심리가 만들어낸 복마전 이라는 누명도 우리 신산업의 기본적 토양을 위협하고 있다. 정보통신과 인터넷혁명은 기존 산업과 기업조직의 변화를 유도해 구경제와 신경제가 서로 긍정적으로 상호작용하며 번영하는 상생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특유의 흑백논리, 즉 구경제와 신경제로 편을 가르고 거래소와 코스닥을 대립되는 개념으로 파악하고 사양산업과 버블산업이라고 서로 폄하하며 바람몰이와 세력다툼을 했던 지난 1년 동안의 분위기가 현재 거래소와 코스닥 두 시장 모두를 침체하게 만드는데 일조를 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벤처산업과 코스닥시장은 결코 냉소적인 조롱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주식시장은 살아있는 생물체나 마찬가지다. 비난과 폄하의 대상이 되는 시장이 건강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 대안은 없다. 다시 벤처기업 육성의 기치를 올려야 한다. 자유와 창의, 그리고 독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벤처산업이 정부의 개입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은 결코 명예롭지 못하다.

지난 주 발표된 정부의 코스닥시장제도 개선책은 세련된 형태의 간접 부양책이다. 문제의 원인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비교적 정확했다고 보인다. 이제 공은 벤처기업과 시장 참여자들에게 넘어갔다. 당신들은 우리의 꿈나무라는 것을 명심하라. 우리 경제의 활력을 되찾아 주는 벤처와 코스닥의 제2의 도약을 기대해 본다.

이원기(리젠트자산운용 대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