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대근/법관과 상식

  • 입력 2000년 8월 20일 19시 07분


판사는 온갖 법령에 몰두하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훌륭한 법관이 갖춰야 할 기본 도구마저 망각하게 될 때가 있을지 모른다. 그 도구는 다름아닌 상식이다. 갖가지 법률서적과 판례를 찾아봐도 상식을 대신할 만한 도구는 없다. 어떻게 보면 법이란 것도 입법부에 의해 조절된 상식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법을 많이 모르는 법관은 그래도 통할 수 있지만 상식이 결여된 법관은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다.

▷미국 법조계에 전해 내려오는 신임 법관을 위한 십계명(十誡命) 가운데 하나다. ‘나의 판결이 상식에 부합하는가’를 늘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 십계명은 1961년 12월호 ‘미국변호사협회지’에 처음 실렸다. 십계명에는 ‘친절하고 이해심이 깊어야 한다’ ‘무슨 말이든 들을 수 있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소송 당사자의 입장에서 중요하지 않은 소송이란 없다’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박원순(朴元淳)변호사가 현직 대법관 등 ‘형사실무연구회’소속 판 검사 60여명 앞에서 우리나라의 사법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해 화제가 되고 있다. 박변호사는 엊그제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형사실무연구회 심포지엄에서 “우리나라의 형사 판결이 과연 상식을 담보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그는 또 “한차례 사법시험통과로 사회적 지위를 얻고 비교적 순탄하게 인생을 사는 판사들이 피고인들의 주장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는 얘기다.

▷이른바 의정부 판사비리 사건 등 법조계 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현행 법조인 양성제도의 문제점이 지적됐지만 그동안 근본적인 수술보다는 사법시험 합격자수를 늘리고 시험을 주관하는 기관을 바꾸기로 하는 등의 미봉에 급급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선발보다는 교육에 중점을 두는 이른바 로스쿨 도입 등 시스템의 개혁 문제는 일회성 논의에 그쳤을 뿐이다. 박변호사가 “우리도 시민들이 재판에 참여하는 배심제 도입을 논의할 때가 됐다”고 제안한 것도 사법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 요구와 관련해 귀담아들을 만한 일이다.

송대근<논설위원>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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