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공의, '장기전' 안된다

  • 입력 2000년 8월 15일 19시 12분


정부와 협상에 나설 의료계 단일안에 전공의들이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의료 공백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대해 우리는 다시 한번 심각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공의들은 협상도 하기 전에 조건부터 다는 자세를 바꿔야 한다.

임의조제와 대체조제를 보다 확실하게 뿌리뽑을 수 있도록 약사법을 재개정하자거나 일반의약품의 낱알 판매가 허용되는 내년 초까지 사실상 의약분업을 유보하자는 등의 주장이 옳건 그르건 간에 그것은 의료계의 협상안일 뿐이다. 그 협상안을 놓고 약계와 정부, 국민의 입장 및 의견을 수렴해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순리가 그러한데도 전공의측이 구속자 석방과 수배자 해제의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정부와 대화조차 할 수 없다고 고집하는 것은 억지다. 전공의측은 구속자와 수배자들이 정부의 잘못된 의료정책에 의한 ‘희생양’이므로 그들부터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그 문제는 국가의 법질서와 관련된 사안인 만큼 의정(醫政)간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의료 공백사태부터 풀고 거론하는 것이 순서다. 전공의측의 이런 경직된 자세는 그동안 많은 희생과 부담을 치러가며 공론화시킨 잘못된 국가보건의료체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마저 무산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 70∼80시간 근무에 월수입은 200만원에도 못 미치는 전공의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이제 알려질 만큼 알려졌다. 그들이 장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전문인에 대한 정당한 대우보다는 희생만을 강요하는 듯한 사회 분위기에 분노와 절망감을 느끼는 것도 이해한다.

그러나 수십년간 쌓여온 비합리적 의료체제를 하루아침에 고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분노와 절망감을 앞세워 환자의 고통은 외면한 채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미래 한국 의료계를 짊어질 젊은 의료인들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전공의들은 의료계 원로들이 촉구한 대로 ‘하루 속히 환자 곁으로 돌아가 본연의 임무에 복귀해야’ 한다. 전공의들은 ‘의사로서 국민의 믿음을 잃으면 결국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는 한 선배의사의 탄식에 귀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젊은 혈기를 앞세워 ‘장기전’을 불사하겠다니 도대체 무엇을, 누구를 위한 ‘싸움’이란 말인가. 결국 국민만 죽어나는 ‘전쟁’은 당장 끝내야 한다. 전공의측의 현명한 결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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