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는 살아있다]알프스 소녀 하이디

  • 입력 2000년 8월 11일 18시 40분


저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예요. 스위스의 아름다운 자연, 그러니까 가파른 절벽 아래 향긋한 풀냄새 풍기는 목초지, 뛰어다니는 염소떼, 한가로이 누워 노래 부르는 목동, 하얗게 쏟아져 내리는 가늘고 긴 폭포의 물줄기…. 그런 것들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평화로워지지 않으세요? 태어난 지 120년. 그동안 저는 그렇게 스위스의 상징, 자연의 상징이 되어 있더군요.

제가 너무나 흠없이 착하고 소박해서 현실감이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어요. 제 이야기는 대도시에서 우울증에 시달리던 요한나 슈피리 아줌마가 어릴 적 살던 알프스 산골을 그리면서 쓴 거니까요. 꿈의 고향에서 사는 꿈의 아이. 당연히 어딘가 비현실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거죠. 하지만 참 많은 사람들이 요한나 아줌마와 같은 꿈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자연과의 화해와 일치’라는 꿈 말예요. 그러니까 제가 그토록 오래 사랑받으며 살아올 수 있었겠죠?

제가 사랑받는 이유 또 하나는, 할아버지를 변화시킨다는 거예요. 사람뿐만 아니라 신과도 단절된 상태로 높은 산에서 고립 생활을 해오던 할아버지는 제가 온 이후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완전히 마을로 내려오고, 성당에도 나가게 된답니다. 이렇게 주인공이 주위 사람을 변화시키는 이야기를 어려운 말로 ‘전향과 감화’ 소설이라고 한다나요. 제가 나온 이후로 특히 동화에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태어났죠. 소공자, 비밀의 정원, 빨강머리 앤, 폴리아나 등등. 우리는 욕심, 편견, 자만심뿐 아니라 열등감, 절망 같은 것들에 사로잡혀 있는 어른들을 아이들 특유의 무기인 천진함과 솔직함과 낙천성으로 치료해 주고 자유롭게 해 준답니다. 그런 면에서 ‘어린이는 인간의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치유자’이기도 하다는 걸 아시겠지요?

제 이야기 2편에서는 프랑크푸르트의 커다란 집 어두운 방에 갇혀 지내던 클라라가 알프스로 옵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맑은 공기와 햇빛, 꽃향기와 풀내음, 염소 울음소리와 젖, 저와 페터의 보살핌, 할아버지가 캔 약초 그리고 함께 하는 찬송과 감사 안에서 지내던 클라라가 휠체어에서 일어나 걷는 거예요!

제 이야기는 그렇게 자연과 인간과 신이 하나가 되어 모든 것이 행복해지는 파라다이스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100년이 넘도록, 행복해지고 싶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여전히 저를 찾는 게 아닐까요? 여러분도 행복해지고 싶으시면 저를 찾아 오세요. 스위스행 비행기표가 아니라 하이디행 책을 펴들고 말이에요.

김서정(동화작가·공주영상정보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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