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중세고수-이창호 누가 이길까? 日만화 설정 인기

  • 입력 2000년 8월 8일 18시 29분


어느날 갑자기 한 소년의 몸 속에 중세(中世) 바둑 고수의 영혼이 들어온다. 바둑을 전혀 못두던 그 소년은 영혼 덕에 바둑 최고수가 된다.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만화 ‘고스트 바둑왕’(서울문화사)의 기본 줄거리다.

4권까지 출간된 ‘고스트 바둑왕’은 새로 나올 때마다 만화대여순위에서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바둑 자체의 승부적인 요소와 ‘바둑 고수의 영혼이 현대에 부활한다’는 독특한 컨셉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고스트 바둑왕’에 나오는 중세의 고수는 일본 헤이안(平安)시대의 후지와라노 사이. 이 만화에서는 후지와라노의 영혼이 일본 에도(江戶)시대 혼인보(本因坊) 슈사쿠(秀策·1829∼1862)의 몸에도 들어갔었다는 설정을 하고 있다.

만약 만화대로 전성기의 슈사쿠나 근대 바둑의 기초를 닦은 도사쿠(道策) 등이 현대에 와서 이창호(李昌鎬)나 조훈현(曺薰鉉) 9단 등 당대 최고수와 바둑을 둔다면 어떻게 될까.

프로기사들은 부분적인 수읽기 능력에서 고대나 중세의 ‘국수급’ 기사와 현대 기사들의 차이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둑이 그동안 진보해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들이 현대에 와서 당장 초일류급 프로기사와 둔다면 이기기 힘들다는 것이 기사들의 중론이다.

즉 바둑은 부분의 합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연결된 유기체라는 구조주의적 사고방식을 바둑판위에 구현한 도사쿠, 선착의 효과를 극대화해 근대 일본 바둑의 정점에 선 슈사쿠, 1930년대 중앙의 가치를 발견하고 돌의 속도를 강조한 우칭위엔(吳淸源) 9단 등의 노력 덕분에 바둑이 끊임없이 발전해왔기 때문에 이들의 성과를 흡수한 현대 기사의 기력이 과거 기사에 비해 강할 수 밖에 없다는 것.

또다른 점은 제한시간과 덤 제도. 신문기전이 활성화된 뒤 과거에는 없던 제한시간과 덤을 도입하면서 흑백의 전략과 착점에 많은 차이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칭위엔 9단은 과거 중국 고대바둑 기보를 검토하면서 “이들을 현대로 데려와 3개월만 훈련시키면 지금의 고수들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동안 바둑이 진보하긴 했지만 당대의 최고수급이라면 현대의 이론과 착점에 적응하는 데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정수현(鄭壽鉉·명지대교수) 9단은 “각 시대의 최고수들이 저마다 장점이 있기 때문에 단정짓기는 힘들지만 개인적으로는 생존해 있는 우칭위엔 9단을 제외하고 도사쿠가 현대에서 가장 성적을 낼 수 있는 기사로 보고 싶다”고 말했다.

당시 상황에서 누가 더 창의적인 바둑을 두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도사쿠 슈사쿠 우칭위엔 같이 바둑 발전에 획을 그은 이론을 발전시키고 실전에 접목시킨 기사들이 바둑 고수중에서도 최고수가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용직(文容直·정치학박사) 4단은 “바둑의 혁명적인 변화도 패러다임의 전환처럼 때가 있는 법”이라며 “이창호 9단도 혁명적 변화의 시기에 태어났으면 누구보다도 창조적인 바둑을 두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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