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외교가]장 폴 레오 佛대사 인터뷰

  • 입력 2000년 8월 3일 18시 57분


프랑스는 올해 하반기 6개월 동안 중요한 국제적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유럽연합(EU) 의장국으로서 EU를 이끌어야 하고, 또 10월 서울에서 열리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는주최국 한국과 공동의장국으로 대사(大事)를 치러야 한다.

모처럼 한국과 긴밀한 협의를 해야 할 빅 이벤트를 앞두고 있는 장 폴 레오 주한프랑스대사를 만나 EU의 ASEM 준비상황 등을 들었다.

“ASEM은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외국 정상들(26개국)이 한자리에 모이는 역사적인 행사입니다.EU는 아시아 파트너들과 경제 문화 정치 등 다방면에서 모든 현안을 논의해 대화의 차원을 제고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U는 여러 현안에 관해 일치된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아시아 정상들도 공통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U 정상들은 이번 회의가 어느 때보다 진솔한 만남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ASEM 정상들이 지난달 일본에서 모였던 선진8개국(G8) 정상들처럼 남북대화를 지지하는 어떤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는지요?

“남북한의 대화와 한반도의 안정을 지지하는 선언을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EU는 한국의 친구로서 남북대화를 돕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막연한 약속만 믿고 앞으로 나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북한은 긴장완화, 인권문제, 대량파괴무기의 비확산 등 분야에서 성의를 보여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탈리아가 북한과 수교를 하는 등 EU 회원국들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어떻습니까?

“프랑스는 2년 전부터 북한과 비공식 접촉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한대사관의 1등서기관도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비공식 차원일 뿐입니다. 북한과의 공식적인 관계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파트너들과 협의해서 결정할 것입니다. 이탈리아 등이 북한과 수교한 것은 상징적 제스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평양에 대사관을 개설할 정도는 되어야 진정한 외교관계가 맺어지는 것이지요.”

―한국과 프랑스의 최대현안은 외규장각도서 반환입니다. 7월 서울에서 열린 협상에서도 실마리가 풀리지 않아 많은 한국인들이 분개하고 있습니다.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난제입니다. 그러나 양국에서 전문가를 임명해 3차례 협상을 한 결과 진전이 있었습니다. 우선 양국은 도서의 교환에 합의했습니다. 프랑스는 외규장각도서와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도서라면 어람용(御覽用)이 아니더라도 교환할 수 있다고 양보를 했습니다. 문제 해결이 가시권 내에 들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레오대사는 중국에서 9년, 대만에서 4년 동안 외교관으로 근무했고 대학에서도 중국어와 말레이인도네시아어를 전공했다. 프랑스 외교관 가운데 대표적인 아시아 전문가인 셈. 주한대사로 온 것도 프랑스 외무부가 그의 희망을 존중했기 때문.

―96년 대우가 프랑스의 톰슨 멀티미디어를 인수하려고 하자 프랑스 국민이 거세게 반발, 인수결정이 번복됐습니다. 그러나 올해 르노자동차가 삼성자동차를 인수할 때 한국인은 별다른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양국의 국민성 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기 소르망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미지의 차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한국은 역사는 길지만 외국에 비치는 이미지는 부정적입니다. 프랑스 국민은 아직까지는 한국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또 대우는 종업원을 감축할 계획이었지만 르노는 현재 2000명인 삼성자동차의 종업원을 1만명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도 한국인의 불만을 잠재운 요인이 되었겠지요.”

문화국가 프랑스의 대사는 여가를 어떻게 보낼까.

“우선 골프는 하지 않습니다. 일요일에도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여유가 없는 편이지만 틈이 나면 음악회 전시회 등을 찾아다닙니다. 좋아하는 화가들의 아틀리에도 방문합니다. 그리고 1시간씩 천천히 수영을 하면서 난해한 랭보의 시를 암송하는 것이 취미입니다.”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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