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of the week]Deftones - White Pony

  • 입력 2000년 7월 20일 16시 40분


▼ 헤비니스의 참아도 좋을 느림

Deftones = 하드코어 밴드?

Deftones는 하드코어 밴드랄 수도 있으며 아닐 수도 있다. 실제 [White Pony]에서 드러나는 Deftones의 음악적 견해는 하드코어 밴드로서의 자각과는 거리가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하드코어란 랩과 메틀/락의 결합체를 말한다.

현재 하드코어 씬을 잠식하고 있는 Rage Against The Machine, Korn, Limp Bizkit, Kid Rock, 그리고 Coal Chamber에 이르기까지, 이들 하드코어 밴드의 사운드는 랩코어라는 형식을 취한다. Deftones는 이러한 일반적인 흐름에서 벗어나 하드코어 밴드들에게서 도외시돼 온 멜로디를 적극 차용하기 시작했고, 그렇기에 그들은 하드코어 씬에서 돌연변이와 같은 존재로 비춰진다. 그러나 하드코어라는 장르가 여전히 정립되지 못한 채 진화의 과정에 놓여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들은 하드코어의 새로운 장을 모색하고 있는 것일 수 있으며 하드코어 밖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Whit Pony?

하얀 조랑말? 'Pony'는 Deftones의 보컬 Chino Moreno의 별명이다. (Sevendust의 [Home]의 마지막 트랙 'Bender'를 부른 'Pony 1'이란 낯선 사람의 목소리에 친숙함을 느꼈다면 이는 다름아닌 Chimo Moreno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Pony Wrong'이라는 가명이 잘못 표기돼 'Pony 1'이 됐다,) 그런데 앨범에까지 'Pony'를 등장시킬 정도로 그가 조랑말에 집착하는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 모호함은 단지 앨범 타이틀 뿐 아니라 [White Pony]를 채우는 곡들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된다. 가사를 전담하고 있는 Chino Moreno의 이야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

특히 그의 가사는 서술 구조가 아닌 대화체의 시나리오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에 모호함은 더욱 심해진다. Chino Moreno 자신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가사 쓰기는 Nick Cave로부터의 영향이라고 한다. 아마도 이번 앨범의 수록곡 중 국내 팬들에게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Korea'일 것이다. 그러나 가사를 살펴보더라도 왜 ' Korea'라는 타이틀을 붙였는지 이해할 수 없다. 'Korea'라는 영어 단어가 다의어도 아닌 이상, 그 이유는 Chino Moreno가 직접 답변해 줄 수밖에 없다.

어둠과 폭력, 그리고 몽환적인 사운드

가사의 모호성은 앨범 전체의 사운드와도 무관하지만은 않다. [Whit Pony]는 하드코어 앨범이라고 하기에는 부드럽고, 느리며, 선명하다기 보다는 약물을 복용한 듯 최면적이다. 하드코어 앨범도 메틀 앨범도 아닌 어중간한 자리에 놓여있는 이 앨범은 그러나 가장 Deftones다운 앨범이다. 데뷔작 [Adrenaline]과 전작 [Around The Fur]의 강렬하고 빠른 헤비니스에 빠졌던 팬들이라면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앨범을 두고 가장 Deftones답다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드코어라는 장르의 틀에서 벗어나 3개의 앨범을 발표하는 동안 변화한 Deftones식 발전 과정에 비추어 볼 때 세간의 이목과 기대에도 불구, 하드코어 밴드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유 속에서 이들은 이질적인 하드코어 사운드를 구축해낸다.

전작 [Around The Fur]가 [Adrenline]에 비해 과격한 래핑이 줄어든 양상을 보였던 것처럼, [White Pony]는 [Around The Fur]에 비해 래핑을 거의 듣기 어렵다. 게다가 한 술 더 떠 질주하는 듯하던 템포는 느려지고, 뚜렷하게 부각됐던 헤비 기타 리프는 몽환적인 사운드를 띠며, Chino Moreno의 보컬은 여성적인 섹시함까지 겸비한다. 그러나 [White Pony]는 이들의 그 어떤 앨범보다도 헤비하다. 보통 헤비한 사운드는 빠른 템포를 동반한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느려질수록 무게감은 더하며, 무거울수록 속도는 더디기 마련. Deftones식의 헤비니스는 느리고, 부드러우며 그래서 몽환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헤비니스도 느림의 미학을 지닐 수 있다.' 이것이 곧 이 앨범의 핵심이다. 그렇기에 헤드뱅잉에 슬램할 수 없더라도 이들의 이 더딘 발걸음은 충분히 참을 수 있는 것이며, 참아도 좋다.

[White Pony]에서 Deftones의 가장 놀라운 변화를 발견할 수 있는 곡은 'Teenager'. 우울한 소년을 연상시키는 Chino Moreno의 보컬, 그리고 얌전한 기타 연주는 Deftones를 천사표 하드코어 밴드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여기에 가미된 Frank Delgado 재미있는 스크레칭은 이들을 위트있는 천사가 되도록 한다. 'Digital Bath' 역시 Deftones의 변화를 말해주는 곡으로, 차가운 전자 사운드에 늘어지는 듯한 Chino Moreno의 관능적인 보컬, 그런지 못지 않은 노이즈로 가득찬 Stephan Carpenter의 기타가 인상적이다. 특히 이 곡은 마치 Smashing Pumpkins(Seam을 알고 있다면 그들 역시) 특유의 로맨틱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보다 헤비하게 엮어낸 듯한 곡 구성을 띤다.

분위기는 상이하지만, 적절한 완급 조절을 통해 후반부에서 절정 상태에 이르는 곡 구조는 낯익은 것이다. 그러나 그 절정부에 드리워져 있는 우울한 그림자는 Deftones가 지닌 또 하나의 특징이다. 'Digital Bath' 뿐 아니라 [Whit Pony]는 어둠과 우울을 통째로 구워놓은 것 같다. 이 어두운 이미지는 Chino Moreno가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Cure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닐 듯하다. 'Digital Bath'의 느리고 우울한 헤비 사운드는 'Rx Queen', 'Knife Prty'를 거쳐 'Pink Maggit'로 이어진다. 특히 'Knife Prty'의 중반부에 등장하는 여성 보컬 Rodleen이 자아내는 고음의 보이스는 그 자체가 호러다. Deftones의 깊어진 우울증은 공포감까지 동반한다.

물론 이 앨범에서 여전히 Deftones의 식의 헤비 사운드를 만날 수 있다. 언제 내가 얌전한 천사였던가 반문하듯 'Elite', 'Korea'에서 Chino Moreno의 보이스는 데쓰 메틀을 연상시킨다. 차이점이라면 'Korea'에서는 비교적 미디움 템포 위에서 관능과 폭력을 오가는 Chino Moreno의 보컬을 만날 수 있는 반면 'Elite'는 보다 빠른 템포의 기타 리프와 사악해질대로 사악해진 Chino Moreno의 보컬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 특히 'Elite'에서 보코더를 통해 이뤄내는 쿨한 사운드는 색다른 맛을 더한다. 비단 보코더의 사용 덕분이 아니라도 이 앨범은 전체적으로 일렉트로닉과 같은 사운드를 연상시킨다.

이는 Frank Delgado의 스크레칭이 두드러지는 데다 기타가 반복적인 리프를 지속적으로 연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낮게 튜닝된 기타는 선명한 선율을 내세우기보다는 몽롱한 느낌의 엠비언트적인 요소가 짙다. 이는 [White Pony]를 보다 묵직한 몽환의 세계로 이끌어가는 데 일조한다.

Deftones는 [White Pony]로 여타의 하드코어 밴드들과 남다른 입지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앨범의 성공 여부를 떠나 이미 Deftones는 남다른 자리에 올라서 있다. 하드코어적이면서도 하드코어답지 않은, 어둠과 폭력, 몽환적인 이들의 사운드는 다른 하드코어 밴드들에서 느낄 수 없는 침묵과도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이들의 사운드가 너무 부드러워져 못마땅하더라도 그 깊어진 사운드를 느낄 수 있다면 헤비니스가 곧 파괴적인 사운드만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000-07-20

조은미 (jamogue@tubemusic.com)

기사제공 : 튜브뮤직 www.tubemus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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