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존/인터뷰]강우석 "파워 1인자답게 열심히 만들겠다"

  • 입력 2000년 7월 6일 11시 20분


강우석 감독이 최근 '감독'이란 호칭을 다시 얻게 됐다. 그렇다고 그가 새로 자신의 작품 제작에 들어간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는 얼마전까지 국내 최대라는 영화배급사 시네마서비스의 대표이사 자리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언제부터인가 '강우석 감독'보다 '강우석 대표'라고 불려 왔다. 그런 그가 대표 자리를 스스로 포기했다.

시네마서비스의 새 전문경영인으로는 지난 9년간 20세기 폭스 코리아의 대표를 맡아왔던 김정상 사장을 영입했다. 그리고 그에게 전권을 양도했다. 자신은 조직 라인상 뚜렷한 위치가 설정되지 않는 '감독'이란 자리로 물러나 앉았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강우석 대표가 물을 먹었다'는 얘기가 흘러 나왔다.

세간의 이런 소문을 의식했는지 그는 지난 4일 있었던 시네마서비스 자체 제작의 새 영화 <불후의 명작> 제작발표회장에 직접 나와 자신이 건재함을 과시했다. 기자회견 중 그는 "파워 1인자답게 앞으로도 영화를 열심히 만들겠다"고 말했다. 공식석상에서 자신 스스로 영화계 파워 1인자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우석 감독을 만나 조금이라도 얘기를 해 보면 왜 이 사람이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국내 영화계 파워 1인자 소리를 듣는 지를 수긍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일단 말이 속사포다. 안성기씨가 1분에 할 말을 강 감독의 경우 10초면 끝낸다. 그러면서도 말의 앞뒤가 그럴듯하게 착착 들어맞는다. 자기 논리가 뚜렷이 서있다는 얘기다. TV 뉴스 리포터들이 강우석 감독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18초안에 끝내야 하는 짧은 TV 인터뷰에서 자신이 할말을 거의 모두 담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청산유수의 입심만큼 그의 또 다른 특징은 결정이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칭찬도 확실하지만 비판도 매섭다. 박광수 감독의 영화 <이재수의 난>에 수십억원을 붓기로 결정을 했을 때는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았지만 모든 정산이 끝난 후에는 공공연하게 '다시는 이런 영화에 돈을 쓰지 않겠다'고 얘기하고 다녔다. 영화에 대한 강우석 감독의 명쾌한, 일도단마(一刀斷馬)의 태도는 오히려 자신의 주위에 사람들을 모으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우석 감독이 어릴 때 '암산왕'이었다는 사실은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는 아무리 복잡한 수치라도 덧셈과 뺄셈, 곱하기, 나누기를 속셈으로 해낸다. 어느 술자리에서인가 한 영화사 대표와 복잡한 결산표를 가운데 두고 속셈과 전자계산기의 대결을 벌여 간단히 승부를 내기도 했다.

강우석 감독의 셈은 언제나 빠르고 정확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사업에 있어서도 그 셈은 대부분 맞아 떨어진다. 그는 막강한 자본을 이용해 사람을 키우며 그 사람을 통해 돈을 벌고 다시 그 돈으로 사람에 재투자를 할 줄 안다. 한마디로 그는 국내 영화판의 확실한, 또 제일가는 '장사꾼'이다.

▼막대한 돈을 투자해 배급한 <비천무>에 대해 평이 좋지 않아 심기가 불편했겠다.

-전혀. 어디 하루 이틀 영화 만드나. 오히려 그 동안 영화를 해오면서 비평가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영화들이 망가지는 것을 수도 없이 봐왔다. 봐라. <비천무> 흥행은 지금 잘되고 있지 않은가. 관객들로부터는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는 얘기다. 비평가나 저널의 평가에 목을 매기 시작하면 계산이 틀릴 때가 많다. 비평과 흥행이 어울리는 영화가 있고 전혀 따로 가는 영화들도 있다. 구분을 잘해야 한다.

▼그렇다면 혹평을 예상했다는 얘기인가.

-그랬다. 처음 영화를 보고 짐작했던 일이다. 하지만 흥행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니까. 그렇지 않은가? 관객들도 그 점을 좋아할 거라고 봤다. 다만 처음 봤을 때는 너무 길었다. 아마도 전문가 시사회 때 영화를 보셨겠지? 좀 길지 않던가? 지금 극장서 상영되고 있는 것은 한 9분 정도를 들어낸 것이다. 1시간 55분 정도로 맞추었다. 얘기가 훨씬 깔끔해졌다.

▼투자한 작품에 대해서는 그렇게 간섭을 많이 하는 편인가.

-물론. 제작할 때는 전혀 아니고. 다만 편집할 때 손을 댄다. 영화를 보는 눈만큼은 나 역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하는 사람이다. 감독이나 프로듀서들은 이 얘기 저 얘기 다 넣고 싶어 한다. 당연하다. 그리고 그건 내가 감독을 해봐서 너무도 잘 안다. 과감하게 잘라낼 건 잘라내고 덧붙일 건 덧붙이고,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김정상 사장을 영입한 것은 시네마서비스에 2백억원을 투자한 '워버그 핀커스'의 요구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디서 그런 이상한 소리를 듣고 다니나. 김정상 사장은 7년전부터 잘 알고 지냈던 사람이다. 김 사장한테 딴 나라 영화 갖고 들어와서 영업하는 게 재미없어 보인다, 미국에서 잘된 작품이라면 여기서도 잘될 거고 안된 작품은 또 역시 안될 거고, 별로 창의성이 없어 보인다는 얘기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해왔다. 1년여전부터는 만날 때마다 '언제 올거냐'고 다그쳐 왔다. 김 사장을 영입한 것은 나 스스로 작품을 고르고 기획하고, 또 제작하는 데 힘을 더 쏟기 위해서다. 이를 두고 강우석이가 밀렸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인데, 아직 시네마서비스 지분에 있어 대주주는 워버그가 아니다. 바로 나다.

▼서로 직함은 어떻게 되나. 수직적 관계인가?

-수평적 관계라고 보면 된다. 김정상 사장은 말 그대로 대표이사로 고용사장이고 나는 한국영화 투자와 기획, 제작을 맡는 감독이 된다. 난 감독이란 호칭이 더 좋다.

▼워버그와의 초기 관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좋다. 매우 좋다. 워버그가 2백억을 들고 시네마서비스에 들어 올 때, 이런 표현해도 좋을지 모르지만 창자까지 보여줄 만큼 철저하게 경영실사를 받았다. 워버그 핀커스같은 세계적 금융회사의 특징은 한번 투자하기로 결정하면 3년이면 3년, 5년이면 5년간 투자금에 대해 이러구 저러구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정적인 자본이란 얘기다.

▼당초에는 3백50억원을 받기로 하지 않았나?

-맞다. 추가 투자자본 백50억원은 다음달 들어 온다. 보다 자신감있게 한국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여유돈이 생겼다고 보면 된다.

▼시네마서비스의 향후 제작 라인업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내년 말까지 모두 19편에서 21편을 제작할 예정이다. 여기에다 사이더스(대표:차승재)가 만드는 영화가 좀더 보태질 것 같다. 라인 업은 거의 짜여져 있지만 아직 공개하기는 좀 이르다. 캐스팅도 완벽하지 않고. 지금 얘기할 수 있는 작품은 '쿠 앤 필름'이 제작할 <무뇌아>란 작품이 있고 '좋은 영화' 작품 <선물>과 <신라의 달밤>, 장윤현 감독의 대규모 제작비의 SF영화, 한석규의 차기 출연작 <제노사이드>, 그리고 장진 감독이 만들 <킬러들의 수다> 등이 포함된다. 김종학 감독도 작품을 준비중이다. 한 달에 한편 혹은 두 편은 반드시 제작한다고 생각하면 될거다.

▼총 제작비를 어느 정도 예상하는가.

-글쎄..시네마서비스 영화 가운데 편당 제작비를 12억원 밑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없고 대부분 20억원에서 25억원이 들거다. 그렇다고 25억원 곱하기 21하는 식으로 돈을 계산하는 멍청한 짓을 하면 안된다. 한 작품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이 다음 작품으로 이월되고 하는 식이니까. 어쨌든 워버그로부터 투자받은 돈, 그리고 국내 금융권과 개인 투자자로부터 충분히 그리고 안정적인 제작비를 마련했다고 보면 된다.

▼강 감독을 두고 끊임없이 '독점'소리가 나돈다.

-웃기는 소리다. 시네마서비스 혼자서 투자하고 제작하고 배급하면 물론 그런 소리가 나올 수 있다. 시네마서비스를 중심으로 제작사가 얼마나 되는지 도대체 알고 하는 얘기인가. 그 제작사들과 모든 손익을 나누는 마당에 어떻게 독점이란 소리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한국영화를 키울까를 고민해야 할 때다. 독점이니 뭐니 하면서 한가하게 이론싸움을 할 시간이 없다. 도대체 어쩌자는 얘기들인가.

▼국내 영화시장은 좁다. 해외진출 없이는 장기적인 발전을 도모하기가 어렵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시네마서비스의 노력은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맞는 말이다. 다만 시간과 공력이 좀더 필요할 뿐이다. 일본시장 진출은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다. 일본 메이저영화사인 쇼치쿠와는 계속 얘기중이다. 목표는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권 전체를 아우르는 시장 공략이다. 우리가 직접 배급하면 더할 나위없이 좋지만 지금 단계는 적정한 가격을 받고 영화를 파는 수준이다. 그 가격 결정이 문제고 조만간 답이 나올 것이다. 이미 이 시장들은 우리 시장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오동진(ohdjin@film2.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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