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는 살아있다]톰 소여/천방지축 개구쟁이

  • 입력 2000년 7월 1일 00시 34분


저는 톰 소여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입가에 미소가 절로 떠오르시지요? 누구나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신나는 어린 시절을 제가 대신 살아주고 있으니까요. 학교 땡땡이치기, 매질 심한 선생님 골탕먹이기, 무인도로 도망가서 살기, 전쟁놀이, 보물 모으기, 약혼(그것도 두 번씩이나!), 심지어는 자기 장례식에 나타나기…. 게다가 한밤중 묘지에서 살인 사건의 목격자가 되어 전전긍긍하다가, 살인자를 처치하고 엄청난 금화의 주인이 되기까지 합니다.

저를 ‘미국 문학사상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분할 따름이지요! 그런데 제 어디가 그렇게 매력적이라는 걸까요? 생각해보면,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선, 저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입니다. 고아라는 것만 봐도 알 만하죠? 학교나 교회도 저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습니다. 저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세상과 인간을 탐구하면서 제 자신을 세워나갑니다. 방종과는 다르죠. 나름대로의 기준(그 중 하나가 ‘책’입니다)이 있으니까요. 실수나 불운에 따른 응분의 대가는 묵묵히 치르고, 남다른 책임감과 리더십을 발휘하는 게 저랍니다.

그리고 또 저는 유머와 풍자를 좋아하지요. 특히 엄숙한 체하며 무게잡는 어른들 놀리는 데는 따라올 사람이 없습니다. 대머리 사건, 집게벌레 사건, 다윗과 골리앗 사건으로 선생님과 목사님을 웃음거리 만드는 거 보셨죠? 하지만 너무 나무라지는 마세요. 인간, 특히 어린 아이들의 자유로운 영혼을 옭아매기도 하는 제도와 사람을 잠시 놀려줄 뿐이니까요. 도끼눈 뜨고 노려보는 대신 함께 한바탕 웃어넘길 수 있어야 우리를 진심으로 안아들일 수 있다구요.

제가 사소한 일에 목숨거는 걸 좋아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폴리이모는 “작은 사내애처럼 별 볼일 없는 물건”이라고 저를 부르시죠. 제가 애지중지하는 보물은 빠진 이, 유리병 조각, 올챙이, 놋쇠 문손잡이, 오렌지껍질, 헌 창틀, 진드기 따위입니다. 비웃지 마세요! 이건 우리 아이들의 엄연하고 엄숙한 현실이라구요. 그 덕분에 저와 제 친구는, 어른들 가치관을 어설프게 쫓는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다른 동화 속 아이들에 비해 이렇게 오랫동안 생생하게 살아 있는 거 아니겠어요?

아쉽게도 이 책 말미에 저는 어른들 사회로 끼어들어갑니다. 죽은 쥐 대신 금화가 제 보물이 되고, 허크를 보통 집으로 끌어들이는 거죠. 그래요, 아쉽지만, 어쩌겠어요. 애들은 결국 어른이 되는 법인걸요. 하지만 한 가닥, 산적이 되는 꿈만은 버리지 않습니다. 저는 어른이 되겠지만, 그냥 어른은 안 될 거예요. 어른 톰 소여가 될 거라고요.

김서정(동화작가·공주영상정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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