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명동 옛 국립극장 되살리자"

  • 입력 2000년 6월 29일 19시 50분


“오태석의 ‘환절기’와 차범석의 ‘산불’ 등이 공전의 히트를 쳤지요. 번역극으로는 ‘안네프랑크의 일기’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원로연극인 장민호씨는 서울 중구 명동 한복판에 위치한 옛 국립극장의 화려했던 60, 70년대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 예술인들은 700석 규모의 좌석을 메운 관객들과 함께 연극, 무용, 창(唱) 등 문화의 꽃을 피웠다. 밝은 회색이었던 건물 바깥은 세월의 때가 묻어 어느덧 베이지색으로 변했지만 아직까지 옛 건물의 원형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옛 국립극장을 문화공간으로 되살리기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이 29일 시작됐다. ‘문화예술의 메카’로서 명동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명동 상인들과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예총) 소속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손을 잡았다.

암울한 일제 강점기인 1934년 일본인 이시하시(石橋)가 일본영화를 상영하기 위한 영화관으로 신축해 첫 모습을 드러낸 이 건물(대지 540평에 지하1층 지상4층)은 당시 ‘부민관’이란 이름으로 장안의 명소가 됐다. 해방 이후 잠시 서울시 공관으로 사용되다가 59년부터 국립극장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73년 10월 국립극장이 중구 장충동으로 옮겨질 때까지 이 나라 예술의 산실로 한 시대를 풍미하다 75년 10월 당시 대한투자금융에 21억여원에 팔렸다.

이 건물에는 당시 시대상이 녹아있다. 자유당 시절 ‘정치깡패’로 악명을 떨쳤던 유지광이 해방이후 이 극장의 문지기를 봤으며, 장면(張勉) 전부통령이 이 곳에서 저격당하기도 했다.

서명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은 75년 정부가 일방적으로 매각한 만큼 정부차원에서 건물을 매입해 상설 공연장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현재 땅값과 건물가격을 합친 시가는 대략 732억원 정도. 연극협회 박웅(朴雄)이사장은 “얼마 전 장안의 명물이었던 서울 국도극장이 그냥 철거돼 문화적 충격을 겪지 않았느냐”며 “21세기 문화의 세기에 문화를 고양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운동은 최근 남대문 북창동과 함께 관광특구로 지정된 명동 상권의 ‘야심찬’ 프로젝트의 하나이기도 하다.

동대문 상가와 자웅을 겨루는 명동 상권이 이제 문화의 메카로 발돋움, 상권의 정상을 탈환하려는 것. 50년대 명동에서 한식집 ‘이학’을 운영하며 이 곳에서 뿌리를 내린 김장환(金璋煥) 명동상가 번영회장은 “서울을 대표하는 명동 ‘예술의 거리’를 살리기 위해 옛 국립극장을 시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연욱기자>jyw1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