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현두/경찰청式 '自意퇴직'

  • 입력 2000년 6월 28일 18시 52분


경찰청이 치안감과 경무관 등 고위 간부 4명에 대해 ‘표적 감사’를 벌여 이들을 강제로 명예퇴직시킨 사실이 본보(28일자 A31면)에 보도되자 경찰청의 한 국장(경무관)이 가판 신문이 나온 직후인 27일 저녁 본사 사회부로 찾아왔다.

이 국장은 “그들은 모두 자의(自意)로 퇴직했다”고 강변했다. 경찰청은 또 이날 밤 각 언론사에 보낸 공식 해명서를 통해 “명예퇴직한 간부들은 고령자나 신변상에 흠결이 있는 사람들이었다”며 이들을 깎아내렸다. 또 “이들에 대한 감사도 통상적 감사였다”고 주장했다.

경찰측의 해명을 종합해 보면 결국 이들 고위 간부는 경찰 재직중 개인적으로 문제가 있어 스스로 ‘명예퇴직’의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퇴직한 본인들뿐만 아니라 감사를 벌인 직원들의 설명과도 거리가 멀다. 더욱이 현재 경찰에 몸담고 있는 경정 이상 상당수 간부들조차도 경찰청의 해명에 수긍하지 않는다.

본인들은 퇴직 경위를 자세히 밝히길 꺼리면서도 “자의로 퇴직한 것은 절대 아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그중 한 명은 “개인적으로는 끝까지 버티고 싶었지만 부하 직원들이 감사에 불려 다니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다”며 그동안의 마음 고생을 내비쳤다.

감사를 맡았던 직원들은 “그분들을 강제 퇴직시킬 정도의 비위를 찾아낸 것은 없다”고 털어놨다. 특히 지난주 명예퇴직한 S치안감은 현재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전셋집에 살고 있을 만큼 경찰 내부에서는 ‘청백리(淸白吏)’로 알려져 있다.

감사를 총괄한 경찰청 고위 간부조차도 “감사를 벌인 것은 내보내기 위한 것이었지 통상적인 감사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물론 경찰청 해명서에 있는대로 ‘조직의 분위기 쇄신과 인사 적체 해소’도 필요하다. 하지만 특정인을 쫓아내기 위해 감사 기능을 동원하고 이를 견디다 못해 나간 간부들이 ‘자의’로 퇴직했다고 왜곡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28일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수뇌부가 경찰개혁을 부르짖을 자격이 있느냐”고 분노한 현직 경찰관에게 뭐라고 답할 것인가.

이현두<사회부기자>ruch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