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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책의향기’는…외국소설―첩보물인기

입력 2000-06-13 19:17업데이트 2009-09-2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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즘 북한에서 인기 높은 소설은 어떤 것일까. 최근 입수된 일본 조총련 중앙상임위원회 산하 문화부 자료에 따르면 그간 알려진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남녀간의 애정문제를 다룬 북한 소설이 많이 읽히는 것으로 국내에 알려져 있었지만 몇 년새 외국소설 번역물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후 가장 인기가 높은 작품은 러시아 첩보소설. 율리안 세묘노프가 쓴 ‘1941년의 봄’과 ‘제2차 세계대전의 나날에’라는 작품이 젊은이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모으면서 최고의 인기작으로 떠올랐다.

국가안전보위부 내부 교육용으로 번역된 첩보소설도 앞다투어 읽힌다. 주로 전쟁 시기 첩보원들의 활약상을 담은 것으로 ‘일본 육군 나가노학교’(2차대전때 일본 첩보원 양성학교) ‘여정탐 마타하리’(1차대전 때 활약한 네덜란드 태생의 미모의 이중첩자) ‘람자의 목소리’(2차대전 때 활약한 러시아 첩보원 조르게이) 같은 작품이다.

책 뒷면에 ‘대내에 한함’이나 ‘대외에 나가지 말것’이란 딱지가 붙은 ‘비공개 소설’이지만 대부분 외부로 흘러나가 탐독되고 있다고 한다.

주목할만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가장 미국적인 색깔을 가진 헤밍웨이나 마크 트웨인 같은 작가도 ‘진보적인 소설가’로 평가받으며 대표작들이 출간됐다는 사실이다. 특히 지난해 번역 출간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중앙당 선전부 산하 외국문 도서출판사가 간행한 외국명작물도 인기가 높다. ‘세계문학선집시리즈’ 같은 전집류는 물론이고 최근 들어서는 고대 로마소설인 ‘스파르타크스’, 발자크의 ‘붉은 것과 흰 것’,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같은 고전들이 널리 읽힌다. 발자크의 소설에는 노골적인 성묘사가 많지만 전혀 삭제되지 않은 채 실려 있다는 점도 북한 세태 변화를 반영한다.

북한에는 50, 60년대부터 러시아 등 해외 고전들이 번역 소개돼 왔다. 그중에서도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 니콜라이 오스트로프스키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등 이른바 ‘혁명소설’들이 꾸준히 읽혀왔다. 그러다 지난 85년 북한이 일부 문화개방을 한 뒤 부터는 서양의 고전 소설까지 영역이 넓어졌다. 정치색이 없는 셜록 홈즈의 ‘살로크 홈스’, 알렉산드르 뒤마의 ‘몽떼 그리스토 백작’과 샤로트 브론테의 ‘제인 에어’ 등 고전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

북한에서 단행본 소설책은 4원(한화 40원) 가량으로 싼 편이지만 대부분 한번에 1만∼2만부 정도만 발간하고 있다. 수요에 따라 수시로 재판을 찍지 않기 때문에 평양 같은 대도시가 아니면 인기소설을 쉽게 구하지 못해 알음알음으로 돌려보거나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실정.

이같은 외국물의 범람은 북한 자체 문학이 급속히 변화된 일반 대중의 정서에 호소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북한 작가동맹위원회에서 나오는 최근 국내 작가들의 소설들은 거의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 귀순자들의 전언. “예전과 달리 애정문제나 관료제 비판 같은 내용도 일부 담겨있지만 우상화가 주조를 이루고 있어 재미가 없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그에 대한 반증이 60년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천세봉의 ‘석개울의 새봄’이 93년 재출간돼 지금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점. 이 작품은 우상화를 배제한 채 50년대 중반 북한 농업협동화 시기의 계급투쟁과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남녀간 사랑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61년 북한 당국에 의해 폐기처분 된 바 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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