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교포작가 유미리 "불행은 내 창조력의 원천"

  • 입력 2000년 6월 12일 19시 37분


“불행을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습니다. 내 창조력의 원천이니까요. 불행을 통해 글을 쓸 힘을 얻고, 글을 씀으로써 불행을 헤쳐나갈 힘을 얻습니다.”

올 2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유부남의 아이를 출산하고, 이어 3월 적나라한 섹스묘사를 담은 소설 ‘남자’를 출간해 다시 한번 일본사회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재일교포 인기작가 유미리(32). ‘남자’는 지난달 국내에서도 문학사상사에 의해 같은 제목으로 번역출간됐다. 좀처럼 만나기 힘든 그를 6일 도쿄 시부야의 출판사 ‘미디어 팩토리’ 인터뷰실에서 만났다. 유미리는 출산 이후 거듭되는 한국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을 한사코 거절해 왔다.

미혼모가 되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집 ‘생명’의 출간 논의 때문에 약속시간에 30분 늦은 유미리는 “미안합니다”를 연발하며 인터뷰실에 들어섰다. 미성숙한 소녀처럼 느껴지는 헤어스타일, 화장기라고는 없는 앳된 얼굴은 3년전 방한 때와 다름이 없었다.

―최근 신상에 많은 변화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성작가의 경우 출산한 뒤 세계관의 변화를 겪으면서 작품세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 내면적 변화를 느끼고 있는지.

“그동안 내 작품이 사람들 사이의 불신을 짙게 깔고 있었던 데 반해, 앞으로는 불신을 극복하는 내용도 담게 될 것 같다. 아이에 대해서는 두가지 무거운 짐을 느낀다. 하나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없다는 점이고, 또하나는 엄마가 알려진 존재이기 때문에 아이도 주변의 시선에 노출되는 짐을 짊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나의 불행이 대물림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 중이다.”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작품이 있나.

“원고지 150장짜리 중편 3편 연작을 구상 중이다. 식도암으로 투병중이던 연출가 히가시 유타카(東由多加)를 간병할 때, 그는 약물 부작용으로 경험한 환각을 내게 자주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환각일 뿐이야’라고 말해 주었으나 나중에는 환각을 공유하게 됐다. 새 소설은 그 환각의 이야기이면서 죽음과 삶을 테마로 하는 작품이 될 것이다. 또한 불타는 듯한 푸르름을 눈앞에 두고 다시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난 한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옆자리에 앉은 출판사 관계자는 전날(5일)이 히가시의 49재일이었다고 귀띔했다. 히가시는 유미리와 10년 가까이 동거했던 인물로, 동거관계가 청산된 뒤에도 친밀하게 지내며 갖가지 문제를 의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미리는 임신으로 컨디션이 최악인 상황에서 그를 헌신적으로 간병했다.

―최신작 ‘남자’ 에 대해 묻겠다. 이 작품은 소설을 쓰는 한 여자의 체험과 그가 써나가는 소설의 내용이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사람의 인체를 손 발 어깨 등 각 부분으로 나누어 형상화시킨다는 발상도 독특한데….

“나의 안에 있는 ‘남자’는 전체의 통일된 상(像)으로 다가오기보다는 부분별로 다가온다. 마치 깨진 유리창이 파편으로 있지만 원래 하나의 유리창이었던 것을 알아보듯이. 그런 느낌으로 오는 것이 남자다. 파편을 줍다가 상처를 입기도 하고, 아픔과 쓰라림이 실려있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한국의 독자들 중에는 책을 읽은 뒤 ‘안타깝다. 유미리가 이제는 안락과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내게는 아픔과 쓰림이 삶을 연속시키는 것이고, 산다는 느낌을 가져오는 요소다. 살면서 자살미수도 여러번 경험했다. 자살미수란 한계상황을 맞아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과도 같은 것인데, 이 처절한 상황은 반대로 ‘얼마나 살고싶은가’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항상 죽고싶었던 나는 사실 항상 가장 치열하게 살고 싶었다. 나처럼 삶에 집착하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독자에게는 ‘내가 이토록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거친 질문인지 모르지만 ‘남자’는 자전적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나.

“(웃음) 그렇다. 자전적이다.”

그는 배석한 출판사 관계자에게 ‘버지니아 슬림’ ‘피아니시모’ 또는 멘톨(박하) 담배가 있으면 갖다 달라고 주문했다. 기자는 “세가지 담배 모두 연약하거나 희미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농담을 건넸다. 그는 “나 자신은 담배 취향처럼 약하지만은 않아요”라고 맞받았다.

―일본어로 작품을 쓰지만 일본에서 부르는 이름도 ‘야나기(柳)’가 아닌 ‘유’다. 이곳에도 저곳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이방인 의식을 여러 번 토로하기도 했는데, 한국 민족임을 어떻게 생각하나.

“아이는 일본사람을 낳았지만 아이를 얻고 나서 오히려 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더 강하게 느끼고 있다. 성(姓)을 이야기했지만, 버드나무(柳)는 구부러질지언정 꺾이지 않는다. 한국민족의 성격과도 같고, 내 성격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글을 쓴다든가, 한국에 관한 글을 쓸 계획은 없는지.

“구체적인 계획과 좀 덜 구체적인 계획이 있다. 혹 1년쯤 한국에 머무른 뒤 한국말로 글을 쓰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것은 이방인 의식을 확실하게 더해줄 것이다. 태어나서 자연스럽게 배운 말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습득한 말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계획은 손기정 선생과 함께 마라토너로 활동했던 외할아버지의 이민사를 추적하면서 나 자신의 ‘뿌리찾기’ 의미를 가진 장편소설을 쓴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내년초 착수할 예정이다. 이 작품을 쓰기 위한 자료를 찾기 위해 하반기에는 한국을 자주 드나들 것이다.”

헤어지기 직전, 최근 일본 언론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를 물어보았다. 혹 아이의 아버지를 밝힐 수 있는지.

유미리는 “여러차례 밝힌 대로 유부남인 기자다. 누가 이름을 적시해서 본인 여부를 묻는다면 부인하지 않을 생각이다”고 말했다. 기자가 “그 정도라면 한국에선 벌써 알려졌을 것이다. 일본 기자들이 게으른 모양”이라고 말하자 그는 소리내어 웃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만나자”라고 인사하자 그는 모처럼 얼굴 가득히 웃음지으며 “고맙습니다”라고 한국어 일본어로 인사했다. 창밖은 초여름의 햇살이 가득한 아름다운 날씨였다.

<도쿄〓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유미리 연보▼

1968 6월22일 하지 아침, 요코하마에서 재일한국인 부부의 딸로 태어남. 아버지는 파친코 기계 기술자.

1969 남동생을 임신한 어머니가 심한 입덧을 하는 바람에 고모집에 맡겨짐. 어머니와의 정서적 관계가 희박한 채 세 살 까지 고모집에서 자람. 고모는 폐품상.

1971 요코하마의 부모 곁으로 돌아옴. 부친의 폭력 등 가정불화 때문에 내성적인 성격이 심화됨. 동네와 유치원 친구들로부터 이지메 (집단따돌림) 당하기 시작.

1978 상점서 물건을 훔치다 발각. 전학을 갔지만 이지메는 계속됨.

1980 학예회에서 ‘리어 왕’을 상연하자고 제의, 연출을 맡으면서 연극의 길로 들어섬. 어머니의 자살 시도를 만류.

1982 중2. 같은 반 반장인 히로에를 동성애적 감정으로 사랑하게 됨. 첫 가출. 어머니를 따라 온천가의 호텔을 돌아다니며 술시중 드는 생활. 몇 차례 자살 기도.

1984 고1때 학교를 중퇴한 뒤 ‘도쿄 키드 브라더스’ 극단에 입단. 연출가 히가시와 만남.

1988 ‘가시를 상실한 시계’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등 희곡을 잇따라 발표, 유망한 희곡 작가 겸 연극 연출가로 부상.

1991 여덟 번째 희곡 ‘물고기의 축제’로 최고의 희곡 문학상인 기시다 구니오 희곡상 수상.

1996 소설 ‘풀하우스’로 이즈미 교카상 수상.

1997 소설 ‘가족 시네마’로 일본 최고권위의 문학상인 아쿠다가와상 수상. 팬 사인회를 열기로 했으나 우익단체들의 ‘서점폭파’ 위협으로 연기.

1998 소설 ‘골드 러시’가 40만부 상회하는 베스트셀러로 떠오름.

1999 ‘주간 포스트’에 임신사실과 미혼모선언 발표.

2000 2월17일 건강한 사내아이 출산. 3월 소설 ‘남자’ 발표, 6월초 현재 일본내 10만부 돌파. 4월 히가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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