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2000년 6월13일, 南과 北

  • 입력 2000년 6월 12일 19시 37분


평양의 하늘도, 서울의 하늘도 오늘 아침은 유난히 맑다. 7000만 겨레는 물론 세계가 지켜보는 남북정상회담의 앞길이 2000년 6월13일 오늘, 남과 북을 경계 없이 다 함께 보듬은 하늘처럼 맑기를 기대해본다.

남북한 정상의 만남은 실로 반세기 만에 처음이다. 해방과 함께 찾아온 분단과 전쟁의 아픔, 냉전체제 아래서의 반목과 질시가 지난 55년간 민족을 짓눌러 왔다. 오늘 마침내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은 그것을 화해와 협력, 신뢰의 관계로 전화(轉化)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비틀린 민족사의 물길을 바꿔 남과 북 한민족이 공존공영하는 기틀을 다지자는 염원이 이 만남에 담겨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북한국방위원장의 회담은 또한 세계사적 의미를 지닌다. 지구촌 유일의 냉전지역에 평화를 심으려고 두 당사자가 자주적 능동적으로 우리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20세기를 휩쓴 이념의 상처로 남은 ‘냉전의 섬’을 2000년대 새 시대를 맞아 ‘평화와 공존의 무대’로 바꾸고 말겠다는 움직임에 세계가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요한 바오로2세 교황이 남북정상회담의 성공 개최를 희망하는 메시지를 발표한 것도 바로 이 같은 역사적 시대적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회담이 지닌 의의가 이처럼 크기 때문에 대표단은 물론 국민의 기대도 크다. 금방이라도 남북관계에 큰 변화가 올 듯이 흥분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북의 실질적 대화는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두 정상이 만나 몇 시간 대화한다고 해서 반세기에 걸쳐 고착된 불신과 반목의 깊은 상처가 쉽게 아물 수는 없다. 오히려 성급한 화해의 제스처는 또 다른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

역사는 흥분과 기대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조급증을 털고 차분히 준비해 큰 흐름에 유연히 대처하는 슬기가 항상 세계사의 큰 물줄기를 바꿔왔다. 지나치게 성과에 급급해 첫 만남에서 모든 것을 풀려고 하거나 그런 기대를 하는 것은 곤란하다.

지난 세기 독일의 통일도 동서독 정상간의 첫 만남 이후 18년이 걸렸으며 그 사이 두 정상의 꾸준한 만남을 통해 진지한 사전대비를 해왔다. 불신하며 대립했던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나 신뢰와 협력 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만 확인해도 이번 남북회담의 성과는 크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번 회담에서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 등 인도적 문제나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 등 상호주의 문제가 진전을 이룬다면 남북간의 이해와 신뢰의 폭을 넓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남과 북 두 정상이 진정으로 서로를 믿는 마음을 교환하는 회담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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