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타워]이훈/'암호'같은 세무용어

  • 입력 2000년 6월 12일 19시 37분


세무서에 가본 사람 치고 ‘어렵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신고 양식과 절차가 복잡한 것은 물론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조차 용어를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용어의 의미를 묻자니 면박이나 받지 않을까 염려스럽고 그렇다고 세금을 모두 내자니 왠지 찜찜했던 경험을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다.

최근 국세청이 발표한 ‘부가가치세 과세제도 변경’과 ‘표준소득률 폐지’의 보도자료를 예로 들어보자.

‘무기장(無記帳)사업자’ ‘추계(推計)신고’ ‘의제매입세액공제(擬制買入稅額控除)’ 등 용어는 물론 ‘세무능력이 낮은 영세사업자의 납세편의를 도모…’ ‘정규증빙서류 수취’ ‘기장능력의 배양’ 등 숱한 한자어와 국적 없는 신조어가 난무하고 있다.

국세청은 98년 세무용어를 쉬운 말로 바꿔 쓰자는 취지에서 319쪽짜리 책자를 낸 일이 있다. 이 책자에서 국세청은 ‘공제하다’를 ‘빼다’로, ‘과세(課稅)’는 ‘세금을 매기다’로, ‘과오납(過誤納)’은 ‘잘못 낸 세금’ 등으로 고쳐 쓰자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동떨어져 있다. 부가가치세 제도 변경으로 165만명, 표준소득률제도 폐지로 72만여명에 대한 세금계산법이 달라지지만 국세청의 자료에는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배려를 찾아볼 수 없다.

‘똑똑한’ 세무관리들에게는 어렵지 않을지 모르지만 대다수 ‘무식한’ 국민에게 세금 용어는 너무 어렵다. 이 때문에 간단한 일도 세무사에 의존함으로써 연간 수백억원의 돈이 낭비된다.

혹시 국세청은 어려운 용어를 고집해야만 ‘힘있는 기관’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국세행정의 개혁’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이훈기자>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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